재정 폭탄 앞두고 '구조개혁' 국회로 떠넘기기
"서울 잔류 제로" 장관 교체…발표는 10월 이후로

이재명 정부의 개혁 과제들이 잇달아 표류하고 있다. 재정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초연금 개혁은 '구조적 결단'을 피한 채 입법부로 공을 넘겼고, "서울 잔류 제로"를 외치며 속도전을 장담했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노조의 실력 행사와 지자체 간 과열 경쟁에 밀려 발표 일정을 미뤘다. 핵심 현안마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지지율 하락세와 맞물려 국정 개혁 동력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50년 46조 재정 폭탄 눈앞인데…국회로 떠넘긴 기초연금

18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연 '졸속적인 국책은행 지방이전 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연 '졸속적인 국책은행 지방이전 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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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1일 공개한 기초연금 개편안은 재정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구조개혁'이 빠져있다. 현행 70% 수급률 틀을 손보지 않을 경우, 연간 약 23조원 수준인 기초연금 재정 소요액은 급격한 고령화와 맞물려 2050년 무려 46조원까지 폭증한다.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지만, 정부는 지급 기준을 '소득 하위 70%'에서 '기준 중위소득'으로 바꾸는 근본적 수술을 유예한 채 "국회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발을 뺐다. 당초 계획했던 브리핑 시점을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문제는 정부가 책임을 떠넘긴 국회가 표심에 극도로 취약한 정치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포인트 올리는 데만 무려 28년의 세월이 걸렸을 정도로 연금 개혁은 입법부 내 '기피 과제' 1순위로 꼽힌다. 뚜렷한 정부안 없이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야 정치권에 기초연금 구조개혁의 총대를 메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개혁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깜깜이 개혁'도 논란거리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개혁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예정됐던 브리핑이 발표 70분을 앞두고 돌연 취소되는 초유의 혼선을 빚었던 점을 지적하며, 사회적 공론화와 숙의 과정이 완전히 실종된 채 밀실에서 '깜깜이'로 추진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나아가 재정 절감만을 노린 기준중위소득 연동과 하후상박식 수급 방식은 수급자 간 편가르기를 부르고 보편적 노후 안정망을 훼손할 것이라며 전면적인 사회적 논의를 촉구했다

"서울 잔류 제로" 장담한 장관 교체…김빠지는 공공기관 이전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가운데)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저지하는 국방부 관계자를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가운데)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저지하는 국방부 관계자를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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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주도성장의 핵심 과제로 추진되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역시 공회전하고 있다. 당초 8~9월로 공언했던 발표 일정은 10월 이후로 연기됐다. 금융권 노조는 지방 이전 저지 등을 내걸고 오는 4일 총파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반면 "서울 잔류 제로"를 공언하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던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개각으로 물러난다.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발표 연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노조의 거센 반발과 지자체 간 과열 유치 경쟁, 지역 민심 악화를 의식해 결단을 미루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육·해·공 사관학교를 하나로 묶는 '국군사관학교 통합' 추진은 예비역 단체와 군 내부의 격렬한 반발을 부르며 안보 갈등으로 비화했고,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손질에 나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역시 시도교육청 및 교육계가 거센 집단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사이다'서 '속도 조절'로 선회…공론화 과정 중시 

기초연금은 국회 폭탄돌리기, 공공기관 이전은 차일피일 연기…흔들리는 '이재명표 개혁' 원본보기 아이콘

이러한 분위기 변화는 국정 지지율 하락세와 맞물리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4~2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7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38.9%)로 떨어져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58.7%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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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 1·2차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 쟁점 과제들을 밀어붙이며 '사이다 국정 운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갈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한발 물러서며 '결정 유예'를 반복하는 패턴이 굳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주사를 놓을 때도 시간을 두고 위로해가며 놓아야 덜 아프듯, 실용적이고 실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언급한 만큼, '고구마 개혁'으로 보일지라도 공론화와 의견수렴 과정을 중시하는 접근법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종=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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