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구정아 국내 최대 개인전 '우스모스'
보고도 못 보고, 안 보여도 존재하는 세계
"본다는 것은 앎"…관람을 ‘확인’ 아닌 ‘발견’으로

비가 내리던 31일, 리움미술관 창밖을 한참 들여다봤다. 돌망태 옹벽 사이에 크리스털 50개가 박혀 있다는데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은 돌들 사이로 몸을 옮겨 시선을 비틀자 그제야 작은 빛 하나가 튀었다. 구정아의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이다. 관람객의 위치와 태양의 각도, 날씨가 맞아떨어져야 모습을 드러낸다. 못 보고 지나쳐도 된다. 정확히는, 못 보고 지나칠 가능성까지 작품이다.


구정아 신작 '모비우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정아 신작 '모비우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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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아(59)의 개인전 '우스모스'는 이런 식으로 관람객의 확신을 자꾸 흔든다. 작품을 찾고, 설명을 읽고, 이해한 뒤 다음으로 이동하는 익숙한 관람법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백자 사이에는 작은 돌 하나가 자기장에 떠 있고, 향은 나무 조각에서 출발해 전시장 전체로 번진다. 어떤 작품은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구정아에게 빛과 냄새, 소리, 중력과 자기장은 작품 주변의 효과가 아니라 작품 자체다.

M2 지하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는 것은 리움을 위해 만든 신작 '모비우스'다. 폭 8m의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로, 가까이서는 뒤틀린 터널처럼 보이지만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무한대(∞) 기호가 된다. 그런데 이 거대한 강철보다 묘하게 더 신경을 잡아끄는 것은 바로 옆 벽에 숨어 있는 1998년 작품이다. 샤프심 57개를 접착제 없이 세워놓았다. 손끝만 스쳐도 무너질 듯하다. 수십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작품은 크기도 재료도 정반대지만 똑같이 중력과 균형, 불안정성을 묻는다. 거대하다고 더 단단한가. 작다고 더 연약한가.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 '그라비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 '그라비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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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가 일반적인 회고전과 다른 것도 그래서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35점을 모았지만 연대기적으로 작품의 '발전'을 설명하지 않는다. 초기의 작고 하찮은 사물과 최근의 거대한 조각을 뒤섞어 놓고, 그 사이에서 30년간 변하지 않은 질문을 드러낸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힘, 완성된 형태보다 사물이 서로 관계 맺는 순간에 관심을 두는 태도다. 전시 제목 '우스모스(OUSSSMOS)' 역시 작가가 1990년대 만든 의미 불명의 단어 '우스(OUSSS)'와 코스모스(COSMOS)를 합친 말이다.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 세계다. 이름부터 친절할 생각이 없다. 그저 모르겠는 채로 조금 더 보라는 쪽에 가깝다.

한 층 위의 'R'은 구정아의 태도를 더 짓궂게 보여준다. 2005년부터 그려온 드로잉 1001점과 이를 담은 나무 상자 77개를 이번 전시에서 처음 한데 모았다. 하지만 1001점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는다. 일부만 벽에 걸고 나머지는 상자 속에 넣어둔다. 걸리는 그림도 전시 기간 중 바뀐다. '전작 공개'인데 어느 관람객도 전작을 한 번에 볼 수 없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결핍이 아니라 작품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서 참석자들이 상자에 보관된 드로잉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에서 참석자들이 상자에 보관된 드로잉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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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식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구정아의 초기 전시에서는 무심히 놓인 일상 사물 때문에 관람객이 작품인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 리움에서는 규모만 크게 달라졌다. 6톤에 가까운 강철과 야광 스케이트파크까지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하찮은 것을 좇아온 작가가 한국의 대표적 미술관에서 대형 스펙터클을 펼친다는 점은 분명 역설적이다.


그러나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그 거대한 작품들이 다시 작은 것을 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모비우스'를 보고 돌아서면 샤프심이 보이고, 야광 구조물을 지나면 창밖의 크리스털 하나를 찾느라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구정아는 이날 "본다는 것은 앎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스모스'에서 그 말은 묘하게 뒤집힌다. 작품과 작품, 빛과 냄새, 오래된 유물과 지금 막 놓인 조각이 느슨하게 얽힌 미술관을 헤매다 보면 본 순간보다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이 더 많다.


구정아 작가가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정아 작가가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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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시장을 나오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6톤짜리 강철이 아닐지도 모른다. 창밖에서 끝내 찾지 못한 크리스털 하나, 무심코 지나친 돌, 처음에는 작품인지 몰랐던 무엇이다. 구정아는 리움에 35점의 작품을 놓았다. '우스모스'가 끝내 묻는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무엇을 보고도 보지 못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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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아: 우스모스'는 9월 5일부터 12월 27일까지 리움미술관 M2와 로비, M1 고미술 상설전시실에서 열린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리움 커미션 신작까지 약 35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구정아 미술관 개인전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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