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개막
폐교·100년 선박창고·을숙도 잇는 세 공간
김진숙의 309일부터 민중가요까지…'소리'로 읽는 저항과 연대

부산 영도 바다를 마주한 100년 된 창고. 사람 키에 맞춰 높낮이를 달리한 스피커 19대가 서 있다. 하나에서 영어가, 다른 하나에서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가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제각각이던 목소리가 조금씩 겹친다. 벨기에 작가 브라힘 탈의 '불협화음의 합창: 바다의 창조'다. 스피커 너머 문밖에는 진짜 바다가 있다. 작품 속 사람들이 "바다가 되고 싶다"고 노래할 때 파도와 항구의 소음까지 합창에 끼어든다.

이란 출신 영국 작가 알리아스카르 아바카스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재활용 직물을 이어 옛 부산남고 운동장에 완성한 작품 '주문'. 거대한 악보를 연상시키는 형태에 보호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부산비엔날레

이란 출신 영국 작가 알리아스카르 아바카스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재활용 직물을 이어 옛 부산남고 운동장에 완성한 작품 '주문'. 거대한 악보를 연상시키는 형태에 보호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부산비엔날레

AD
원본보기 아이콘

한 사람의 목소리는 언제 합창이 되는가. 29일 개막한 2026 부산비엔날레는 이 단순한 질문을 부산이라는 도시에 던진다. 제목은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 공동 전시감독은 합창을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차이와 긴장을 지운 채 하나가 되는 일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번 합창에는 지휘자가 없다. 22개국 46명(팀)의 작가가 부산현대미술관과 옛 부산남고등학교, 스페이스 원지 세 곳에서 저마다 다른 음을 낸다.


배경에는 부산의 오래된 목소리가 있다. 2011년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영도조선소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서 309일을 버텼다. 혼자 시작한 농성 아래로 희망버스와 시민들이 모였다. 한 사람의 외침이 다른 몸들을 불러내고 결국 집단의 목소리가 됐다. 전시감독들은 이 장면을 4·19혁명과 부마항쟁, 촛불집회, 2024년 응원봉 시위와 함께 이번 전시를 떠받치는 한국의 '소리의 역사'로 읽었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전시장도 반듯한 화이트큐브에 머물지 않는다. 영도의 스페이스 원지는 원래 선박 장비를 보관하던 100년 된 창고다. 소금기와 녹슨 철골, 닳은 벽에는 항구 노동의 시간이 남아 있다. 선원 출신 필리핀 작가 조아르 송쿠야는 갑판과 항구에서 보낸 시간을 그림과 소리로 되살린다. 선원으로 부산항에 들어왔던 사람이 이번에는 비엔날레 작가가 돼 같은 바다로 돌아왔다. 바다는 이 전시에서 풍경이라기보다 노동자를 보내고 받아들이고, 기억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통로에 가깝다.


올해 초 학생들이 떠난 옛 부산남고는 정반대의 침묵을 품고 있다. 칠판의 시간표와 교실 규칙은 그대로인데 학생 대신 작품이 자리를 차지했다. 운동장에는 알리아스카르 아바카스가 부산 주민들과 헌옷을 이어 만든 거대한 '주문'이 펼쳐졌다. 학교가 가르치는 지식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누구의 목소리는 교과서에서 빠져왔는지를 묻는 공간이다. 폐교를 미래의 교육을 묻는 전시장으로 선택한 것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영리한 장치 중 하나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으로 가면 합창은 조금 더 기괴해진다. 류성실의 '만가지 꿈'에서는 유령 같은 마네킹 12구가 리프트 위에서 노래한다. 세계 일주 뒤 반드시 성공해 돌아와야 하는 아이, 95세에도 거대한 꿈을 요구받는 해골, 수백 년째 끝나지 않는 과업을 짊어진 소녀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취하고 꿈꾸라는 한국 사회의 명령을 15분짜리 기괴한 합창극으로 뒤집는다. 아름다운 화음이라기보다 웃다가 섬뜩해지는 노래다.

AD

물론 '저항' '연대' '목소리'라는 단어가 워낙 선명해 작품보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먼저 들리는 순간도 있다.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비엔날레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그러나 잘된 작품들은 그 설명에서 빠져나온다. 야잔 칼릴리의 작품에서는 시구를 수놓은 39개의 모자를 관객들이 사서 쓰고 전시장 밖으로 나간다. 작품은 완성되는 대신 해체된다. 사람들이 흩어질수록 시 역시 부산 곳곳으로 사라진다.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는 것만이 연대는 아니라는 역설이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개막 브리핑에서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부산 영도구 옛 부산남고에서 열린 2026 부산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 개막 브리핑에서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비엔날레는 11월1일까지 65일 동안 계속된다. 세 전시장을 모두 보고 나면 '합창'이라는 말의 뜻이 처음과 조금 달라진다.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다른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듣는 일. 부산의 바다는 그 오래된 일을 아직 하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