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측, 일주일 넘게 늦어진 전시 준비 돌입…28일부터 작품 설치
민형배 "광주로선 부끄러운 일…책임 묻겠다" 재단 공개 질타
주한 중국대사도 유감·우려 표명…지역 예술계 사과·재발방지 촉구

27일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화물차가 들어섰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대만 파빌리온(Taiwan Pavilion)' 전시장을 꾸밀 기자재를 실은 차량이었다. '대만'이라는 명칭을 둘러싼 갈등으로 일주일 넘게 늦어진 전시 준비가 개막을 9일 앞두고서야 다시 시작됐다. 국립대만미술관(NTMoFA) 부관장과 전시 큐레이터도 현장을 찾아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된 데 대해 광주 예술계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작품 반입과 설치는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경.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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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파행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책임론이 불거진 데 이어 27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까지 '대만 파빌리온' 명칭 사용에 유감과 우려를 나타내면서 사안은 미술계를 넘어 외교 문제로 번졌다.


논란은 파빌리온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지에서 시작됐다. 대만 문화부와 참여 작가들은 국립대만미술관이 기획 단계부터 'Taiwan Pavilion'이라는 이름으로 제안서를 제출하고 재단과 협의해왔는데, 재단이 지난 6월부터 공식 홍보물에 이를 'NTMoFA Pavilion'으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대만 측 큐레이터와 작가 10명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를 '정치적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재단의 설명은 달랐다. 올해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참여 주체를 국가와 기관으로 나눴으며, 지난 1월12일 협약 당사자가 국립대만미술관이었던 만큼 '기관 파빌리온'으로 분류해 기관명을 표기했다는 것이다. 올해 파빌리온에는 국가관 16곳과 기관 11곳이 참여한다. 재단은 전시 내용이나 작품 선정, 작가와 큐레이터의 표현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며 명칭 문제는 참여 유형과 공식 홍보물 표기를 둘러싼 행정·협약상의 이견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대만 문화부는 재단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맞섰다. 국립대만미술관은 처음부터 대만을 대표해 참가했고 제안과 협의 단계에서도 'Taiwan Pavilion' 명칭을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해외 미술전문지 'The Art Newspaper' 역시 양측이 1월 협약의 성격과 명칭 합의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갈등은 실제 전시 차질로 이어졌다. 국립대만미술관 작품은 지난 18일께 국내에 도착했지만 전시장인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5관에 설치되지 못했다. ACC는 국제적인 논란으로 번진 만큼 재단과 대만 측이 전시관 명칭을 먼저 합의해야 공간 사용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대만 문화부는 지난 25일 재단과 ACC가 예정된 전시 설치를 막고 있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26일까지 'Taiwan Pavilion' 명칭으로 전시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재단은 25일 대만 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만 문화부가 국립대만미술관이 대만을 대표해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하며 'Taiwan Pavilion' 명칭을 사용한다는 공식 문서를 보내자 재단은 이를 근거로 명칭 사용을 승인하고 ACC에도 전시 진행을 요청했다. 재단은 이를 '명칭 변경 승인'이라고 밝혔고, 대만 문화부는 이튿날 'Taiwan Pavilion'이라는 이름이 복원됐다며 환영했다.


명칭은 되돌아왔지만 광주 내부에서는 책임론이 본격화됐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을 겸하는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광주로서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민 시장은 예술 영역에 정치나 행정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논란으로 광주의 이미지까지 훼손된 데 대해 "나중에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이사장이 공개적으로 재단의 업무 처리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면서 명칭 결정의 경위와 내부 의사결정 과정도 후속 쟁점으로 떠올랐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논란의 출발점을 행정상의 분류 문제로 설명했다. 윤 대표는 26일 KBC 인터뷰에서 국립대만미술관과 기관 차원에서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실무진이 기관 참여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관과 기관관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국제·외교적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대만 파빌리온(Taiwan Pavilion)’ 홍보물(왼쪽)과 파빌리온 공식 홈페이지 참가자 명단. 명칭 논란 끝에 재단은 ‘Taiwan Pavilion’ 사용을 승인했고, 홈페이지에도 ‘Taiwan’으로 표기됐다. 대만 문화부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대만 파빌리온(Taiwan Pavilion)’ 홍보물(왼쪽)과 파빌리온 공식 홈페이지 참가자 명단. 명칭 논란 끝에 재단은 ‘Taiwan Pavilion’ 사용을 승인했고, 홈페이지에도 ‘Taiwan’으로 표기됐다. 대만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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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미술계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민족미술인협회와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오월미술관, 광주여성영화제 등은 'Taiwan Pavilion' 명칭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은 환영하면서도 재단의 공식 사과와 의사결정 과정 공개,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특히 재단이 발표문에서 '명칭 복원'이 아닌 '명칭 사용 승인'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참여자가 자신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비엔날레가 허가하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국내외 참여 작가들의 반발도 컸다. 대만 측 작가와 큐레이터의 성명에 이어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큐레이터 36명은 전시 제목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를 비튼 '너는 네 이름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Name)'라는 공개 입장문을 내고 명칭 복원을 촉구했다. 국제 미술계에서도 이번 사태를 대만의 국제적 명칭을 둘러싼 정치적 민감성과 예술기관의 자율성이 충돌한 사례로 주목했다.


명칭 논란이 일단락된 직후에는 중국 측의 반응도 나왔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27일 전남광주시 광주청사에서 민 시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재단이 대만 측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 파빌리온' 명칭 사용을 승인한 데 대해 유감과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시장은 정치적 판단이 예술 영역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대만이 국가로 인식될 수 있는 명칭 사용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대만은 반대로 국제 문화·스포츠 행사에서 'Taiwan' 명칭 사용을 정체성과 대표성의 문제로 강조해왔다. 이번 논란을 다룬 해외 언론들도 광주비엔날레가 단순한 전시 행정을 넘어 양안 관계의 민감한 정치적 지형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개막을 불과 아흐레 앞두고 대만 파빌리온도 다시 전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명칭 논란은 전시 정상화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제행사에서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어떤 원칙과 절차로 다룰 것인지, 이번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려졌는지를 둘러싼 책임과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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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싱가포르 작가이자 기획자인 호추니엔 예술감독이 이끄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다음 달 5일부터 11월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예술적 실천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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