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소비 급증…골목상권 '효자' 부상
키오스크·앱 등 장벽에…젊은 상권선 배제
"고령층 배려 아닌 동등한 소비자로 봐야"

"컴퓨터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 괜히 제가 있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박순희씨(79)는 얼마 전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가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무인주문기(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돋보기를 고쳐 쓰며 망설이는 사이 뒤에 서 있던 남성이 "설명이라도 읽고 누르세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서러웠다"고 털어놨다.


반면 서울 구도심의 오래된 골목상권으로 접어들면 풍경은 180도 달라진다. 서울 종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성만씨(52)는 최근 키오스크 기계를 과감히 치우고 푹신한 의자와 원목 테이블을 들여놨다. 그러자 60~80대 단골 손님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매장은 은은한 쌍화차 향과 함께 어르신들의 정겨운 사랑방이 됐다. 김씨는 "종일 노트북을 켜두는 대학가 카공족보다 매일 찾아와 차 한 잔 나누며 안부를 건네는 어르신들이 훨씬 고맙다"며 "손님 타깃을 바꾸고 나서 매장 회전율과 매출이 2배 이상 뛰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어르신들이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키오스크 없이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고 전통차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전체 손님의 80% 이상이 고령층이다. 박호수 기자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어르신들이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키오스크 없이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고 전통차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전체 손님의 80% 이상이 고령층이다. 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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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과 연령 차별로 일상에서 밀려나던 고령층이 오프라인 상권의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매장에는 단골이 늘고 있지만, 디지털 장벽이 높은 공간은 여전히 진입조차 망설이는 모습이다.

서울 중구의 식당도 젊은 직장인을 겨냥한 퓨전 브런치 메뉴를 없애고 2만원대 보리굴비 한상차림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갈한 놋그릇과 깔끔한 테이블 세팅으로 분위기를 바꾸자 주요 고객층이 60~70대 남성으로 바뀌었다. 식당 주인 최모씨(64)는 "어르신들이 동창회나 모임 장소로 자주 찾아주신 덕분에 가게에 온기가 돈다"고 말했다. 인근 일부 카페들도 무인 결제기 대신 종이 메뉴판을 두고 무더위 쉼터를 자처하며 실버 고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설명 좀 읽고 누르세요" 한숨 쉬며 돌아서던 발길 붙잡은 '반전'…매출 2배 뛰었다 원본보기 아이콘

자영업자들이 이처럼 고령층 모시기에 나선 것은 단지 온정 때문만은 아니다. 고령층의 소비력이 커지면서 새로운 소비층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카드가 개인 신용·체크카드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객의 카드 이용금액은 2019년 대비 143%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고객 이용금액 증가율(34%)의 4배를 웃도는 수치다. 고객 수도 102% 증가했다.

특히 최근 1년간(2025년 5월~2026년 4월) 65세 이상 고객의 주요 업종 이용금액 가운데 86%가 오프라인 상권에서 나왔다. 결제 건수 기준으로는 음식점(38%)과 커피·디저트 전문점(10%)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온라인 쇼핑이나 배달 앱 대신 직접 매장을 찾는 실버세대가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효자 손님이 된 셈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허모씨(82)가 자판기 커피를 이용하고 있다. 허씨는 “젊은 사람들이 가는 커피숍보다 자판기 커피가 아직은 마음이 편하다”며 “키오스크가 있는 곳은 주문할 때 괜히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허모씨(82)가 자판기 커피를 이용하고 있다. 허씨는 “젊은 사람들이 가는 커피숍보다 자판기 커피가 아직은 마음이 편하다”며 “키오스크가 있는 곳은 주문할 때 괜히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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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령층을 새로운 소비 주체로 바라보는 상권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이들이 체감하는 일상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실버 특화 상권을 벗어나는 순간 디지털 장벽과 연령 차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최근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한 디저트 카페를 찾았던 정모씨(76)는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출입구 옆 QR코드 안내판 앞에서 헤매자 직원이 "모바일 예약 앱으로 미리 등록하셔야 들어오실 수 있다"고 안내했다. 정씨는 "앱 설치나 본인 인증 같은 단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그냥 나왔다"며 "우리를 마치 이방인처럼 바라보는 젊은 손님들의 눈빛에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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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령층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자리 잡고 있지만 상업·여가 공간은 여전히 젊은 층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며 "고령층을 배려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소비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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