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문제가 더 많았다."
변호사 출신인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때 사법 만능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조인이었을 때와 달리 부처 수장 자리에서 사회 전반의 갈등 현상을 바라보다 보니 법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답안지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원 장관은 인식 격차에서 갈등이 비롯된다고 보고 취임 후 줄곧 남녀 성인식 차이를 공유하는 '소다팝 토크 콘서트' '청년 참여 공존·공감위원회' '언박싱 토크' 등을 진행했다. 대화와 공론장을 통해 인식 격차를 좁혀보겠다는 뜻에서다. 원 장관은 이 과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법이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갈등은 이해와 수용·조정의 과정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런 갈등 해결의 방식을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이 학교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와 부딪히고, 잘못을 사과하고, 때로는 양보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실은 대화와 조정을 통해 갈등 해결 방법을 익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교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 간 다툼은 학교폭력 신고로,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한 불만은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진다. 학교 안에서 교육적으로 풀어야 할 갈등까지 '누가 잘못했고 어떤 규정을 어겼는지, 어떤 처분을 받을지'를 따지고 있다. 교육이 사법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지난 25일 교육의봄 등 교육시민단체를 비롯해 교원·학부모단체 12곳이 참여한 '교육공동체 신뢰회복 국민운동'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는 8회 연속 토론회를 시작했다. 첫 주제는 '교육 사법화의 역사적 경로'였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제기되는 교육공동체 신뢰 붕괴 문제는 2023년 서이초 사태로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수십 년간 여러 요인이 쌓인 결과이며 그 과정에서 법적 해결이 갈등을 푸는 핵심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대를 거치며 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본격화했다. 이재영 한국평화교육훈련원장 분석에 따르면 2011년 대구 중학생이 또래 집단 괴롭힘에 사망한 사건이 분기점이 됐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잠복했던 학교폭력 문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학교폭력은 '교육적으로 다뤄야 할 학생 간 문제'에서 '범죄와 엄벌의 문제'로 재정의됐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마련돼 이러한 엄벌주의가 제도화됐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도록 한 학교폭력 생활기록부 기재·보존 지침은 법적 다툼을 불러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대학입시를 학교폭력과 직결한 시도는 학교와 교사를 흔들었다. 학교폭력을 '교권과 아동인권의 충돌' 구조로 재편하면서다. 학교폭력 징계 결정에 불복한 행정소송은 2012년 50건에서 2018년 661건으로 13배 넘게 증가했다.
덩달아 '아동학대 신고'도 늘었다. 아동학대 신고는 접수되는 순간 학교와 교사가 대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담임 교체 요구가 이어지고, 사안에 따라 교사가 학생과 분리되거나 직위해제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학폭 사안 처리는 늦어지게 된다. 이 원장은 이를 "학폭 처분을 지연시키고 무력화하는 가장 저렴한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단독] "중국 가면 사망해도 모른다"…줄줄 새는 ...
이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초·중·고 교직원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8년 5168명에서 2021년 6065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아동학대 행위자로 등록된 교직원 6787명 중 실제 기소된 인원은 110명, 1.6%에 불과했다. 교육부가 2023년 9월부터 올 2월까지 집계한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1870건 중에서도 종결된 993건의 90.4%가 무혐의였다. 교실의 사법화가 어떻게 학교를 흔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학교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갈등을 경험하고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피해를 이해하고, 책임지고, 다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러나 모든 갈등을 법으로만 푸는 모습에 익숙해지는 순간 이해와 수용,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기회는 잃게 된다. "아이들에게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라'가 아니라 '잘못했으면 걸리지 마라'를 가르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깊이 고민할 때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