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발주국 요구·금융·기술·IP 변동 시 주도기관 변경
프로젝트별 수출체계 탄력 운용

원전 수출 주도권 정부가 조정…한전·한수원 '고정 역할' 없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정부가 해외 원자력발전 사업에서 발주국 요구나 국제관계·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간 사업 주도기관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5월 한전은 대외협상·금융, 한수원은 건설·운영을 맡도록 원전 수출체계를 개편한 데 이어 개별 프로젝트의 금융·기술·외교적 여건에 따라 사업을 이끄는 기관까지 바꿀 수 있는 조정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미국 원전시장 진출과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 가능성 등 기존 원전 수출과 다른 사업구조가 잇따라 거론되는 가운데 발주국과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수출 진용을 탄력적으로 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한전 금융·한수원 건설' 고정아냐

2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이 같은 내용의 '한국전력공사와 그 자회사 간 해외 원자력발전 사업의 협력 및 추진 체계에 관한 지침'을 제정·고시했다. 지침은 해외 원전사업에서 한전과 자회사 간 수행 범위를 명확히 하고 기관 간 과당 경쟁과 비효율을 방지해 원전산업의 통합적인 수출 역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핵심은 산업부 장관에게 개별 해외 원전사업의 '주도기관 변경'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산업부 장관은 사업 참여·이행과 관련한 ▲국제관계 및 국가안보 영향 ▲발주국 요구 ▲재원조달·리스크 대응 역량 ▲기술·운영 역량 ▲원전수출 관련 계약·지식재산권 등에 중대한 변동이 발생하면 원전수출전략협의회 심의를 거쳐 해당 사업의 주도기관을 변경할 수 있다.


이는 지난 5월 마련한 한전·한수원의 역할 분담을 모든 해외 원전사업에 고정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사업 여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정부는 당시 한전과 한수원이 국가별로 시장을 나눠 맡던 체계를 폐지하고 공동 사업개발과 공동 주계약을 원칙으로 하는 'K-원전 원팀' 체제로 전환했다. 한전은 대외협상과 투자·금융을, 한수원은 건설·운영을 주도하는 기본적인 역할도 나눴다.

이번 지침으로. 원전 수출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외교·통상 현안이나 계약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기존 역할분담에 얽매이지 않고 정부가 대응체계를 조정할 수 있게됐다,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설까지…원전수출 셈법 복잡

최근 불거진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설은 해외 원전사업의 구조가 복잡해지는 사례로 꼽힌다. 산업부는 "한미 양국이 공동출자해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인수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이후에도 업계 등을 중심으로 미국 원전 건설 참여와 웨스팅하우스 지분 확보를 연계한 다양한 투자구조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원전 수출에서 지식재산권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기술을 둘러싼 분쟁을 벌이다 지난해 1월 합의를 통해 분쟁을 종결했다. 최근 지분 투자설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 이해관계를 공유할 경우 미국 원전시장 진출뿐 아니라 기존 지식재산권 및 수출통제 문제를 협의할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투자 규모와 재무 부담, 한국 기업이 확보할 실질적인 권한 등을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같은 사업환경에서는 이번 지침에 담긴 주도기관 변경 기준이 실제 수주 전략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지침은 재원조달·리스크 대응 역량뿐 아니라 원전수출 계약과 지식재산권 권리까지 주도기관 변경 판단 기준으로 명시했다. 또 발주국의 요구와 국제관계·국가안보 영향도 변경 사유에 포함했다. 해외 원전 수출을 단순한 건설 프로젝트가 아니라 금융·투자와 기술, 외교·안보가 결합된 사업으로 보고 정부가 프로젝트별로 대응체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다만 정부가 자의적으로 주도기관을 바꾸지 못하도록 절차적 장치도 마련했다. 산업부 장관은 원전수출전략협의회 심의를 거쳐야 하고 한전과 자회사의 의견도 사전에 청취해야 한다. 외부 법률 의견서를 첨부해 변경 사유와 예상 시점 등을 해당 기관에 미리 서면으로 알리고 한전과 자회사에 의견 제출 기회도 줘야 한다.


한수원 단독 주도 예외도 명시

한수원이 사업 전반을 주도할 수 있는 예외도 구체화했다. 산업부 장관이 인정하면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해외사업 ▲한수원이 이미 계약했거나 건설·운영 중인 해외 원전사업과 해당 국가의 후속사업 ▲한수원이 발주국 정부 또는 발주처와 사업참여 약정을 이미 체결한 사업에서는 한수원이 사업개발과 계약, 사업이행을 총괄하고 지분투자까지 주도할 수 있다.


다만 기존 계약·약정을 근거로 한 특례는 지침 발령일인 지난 10일 이전 체결분으로 한정했다. 기존 한수원 사업의 연속성은 인정하면서 향후 신규 사업에는 한전·한수원의 공동 사업개발과 역할 분담이라는 새 체계를 적용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전과 자회사 간 이견이 발생하면 산업부 장관에게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장관은 사업 추진방식과 주도기관, 참여구조 등에 대해 조정을 권고할 수 있다. 권고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산업부는 재정경제부와 협의해 지침 이행 여부와 기관 간 협력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의 별도 지표로 편성하고 가·감점 방식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AD

원전 업계 관계자는 "해외 원전 사업은 발주국의 정책이나 금융 조건, 국제관계 등에 따라 사업 여건이 수시로 달라질 수 있어 처음 정한 역할 분담을 끝까지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주도기관 변경 절차를 명확히 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한전과 한수원 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정부가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