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라스트 하우스'
균열을 내고도 다 들여다보지 않아
넷플릭스 영화 '라스트 하우스'는 제이슨(바그네르 모우라) 가족에게 닥친 재난을 그린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폭우가 쏟아지고, 집의 현관과 창문이 갑자기 봉쇄된다.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고 뚫리지도 않는다. 마을 전체가 같은 처지에 놓이면서 제이슨 가족은 집 안에 갇힌 채 5년을 보낸다. 굴뚝 틈으로 짐승을 잡고 바닥 아래 흙에서 식물을 키우며 가까스로 생존한다.
영화는 그 5년 동안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은 습격이나 공포 대신 식량 배분과 물자 관리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가족이 격리 생활에 적응하고 때로는 이를 즐기는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룬다. 물론 갈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특히 밝았던 자녀들의 내면에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그러나 그 갈등은 깊어지기도 전에 후반부의 장르적 전환에 밀려 서둘러 봉합된다. 갈등의 원인이 외부 생명체로 수렴하면서, 집 안에서 가족 사이에 벌어진 일은 끝내 물음표로 남는다.
이 영화를 팬데믹의 알레고리로 보는 시선이 많다. 집 안에 갇힌 가족이라는 설정이 코로나19 당시의 봉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만으로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고립은 팬데믹 이전부터 우리 사회의 저류(底流)로 자리 잡고 있었다.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인간관계의 중심도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무엇을 겪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결국 '라스트 하우스'가 본질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재난의 기억이 아니다. 만성적인 단절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가장 가까운 관계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르테리에 감독은 이러한 균열을 무심한 듯 드러낸다. 제이슨은 사냥과 물자 확보에 몰두하며 가족의 생존을 홀로 책임진다. 앤(그레타 리)은 작물을 기르고 살림을 꾸리면서 아이들 곁을 지킨다. 부모가 각자의 역할에 파묻힌 사이 그레이엄(가브리엘 바르보사·노아 알렉산더 소스노프스키)과 루스(에마 호·라일리 청)는 서로에게서, 또 부모에게서 조금씩 멀어진다.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그 차이가 쌓이면서 관계에 거리가 생긴다.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 장면들에 담겨 있다.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4.9%는 '교류 저조층'에 해당한다. 휴대전화로 교류하는 사람이 20명 미만이고, 연간 교류 횟수도 500회에 미치지 않는 이들이다.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다인 가구의 교류 저조층 비율은 5.2%로 1인 가구(3.3%)보다 오히려 높았다. 가족과 한집에 산다고 해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일상에서도 이런 풍경은 흔하다. 아침에 짧은 인사만 나눈 채 각자 흩어지고, 저녁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식사한 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가족이 적지 않다.
'라스트 하우스'가 정면으로 다뤘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5년 동안 가족을 갉아먹은 것은 바깥의 정체불명 존재가 아니라 집 안에서 조금씩 벌어진 마음의 거리다. 르테리에 감독도 이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는다. 부모와 자녀 간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는 장면을 몇 차례 보여준다. 다만 내부의 균열이 외부의 위협보다 더 두려울 수 있다는 지점까진 밀고 들어가지 못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 최고 7~13%, 주식 말고 적금 넣으시죠"…결국 ...
고립을 막는 힘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가까이 있을 때도 상대를 살피고 끊임없이 말을 건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이슨 가족이 5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도 서로를 향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 끈이 흔들리는 순간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장 깊이 파고들었어야 할 대목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