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 임명권 침해"
임명동의안 거부 등 파상공세
대법관 제청은 사법권 독립장치
임명권자와 조율, 압력으로 작용
법원 안팎 靑 비판도 쇄도

대법관 서면 제청 블랙홀 빠진 사법부…판사들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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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대법관 '서면 제청' 사태가 헌법 기관 간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 임명권 침해를 내세워 임명동의안 거부와 법 개정 카드까지 꺼내 들며 파상공세에 나서자 사법부 내부는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 발단은 대법원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대면 협의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을 제청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법원 내부의 기류는 정부·여당의 시각과 다소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할 뿐 세 권한 사이의 우열을 정하거나 '사전 협의'를 강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25일 "제청권과 동의권, 임명권의 서열에 대해 규정된 바가 없고 오직 순서가 있을 뿐"이라며 "대법관 제청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 장치이므로 임명권자와의 사전 조율은 오히려 임명권자가 제청권자에게 가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정욱도 북부지법 판사(연수원 31기) 역시 최근 법원 내부망을 통해 "관행은 자연법칙이 아니기 때문에 깨질 수 있고, 관행이 그대로 법은 아니다"면서 "(서면)제청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고 부적절하다. 제청반려, 재제청, 임명동의안 거부는 초법적 발상"이라고 했다. 관행이 깨졌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상 보장된 제청권 행사를 위법으로 몰아갈 수 없다는 취지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연수원 13기) 또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 후 제청하는 관행은 노무현 정부 이후 불과 20여년 된 일"이라며 "대법원장이 임명권자의 요청에 따라 제청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삼권분립이나 사법권 독립보다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에 순치된 결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안팎에서 이번 사태를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추천한 손봉기 후보자 제청이 갖는 남다른 상징성 때문이다. 손 판사(22기)는 고등부장이나 고등판사가 아닌 지방법원 소속 판사로서는 최초로 대법관에 제청됐다. 이른바 '향판(지역법관)'이자 비(非)서울대 출신으로, 고법과 지법의 이원화, 지역균형발전,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파격적이고 의미 있는 인사라는 평가가 법원 내 주류 시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손 판사의 대법관 임명은 요원해졌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인권 보장에 충실한 관점을 유지해왔는지, 대법원의 상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왔는지에 맞춰져야 하는데 임명권과 제청권의 충돌로만 소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하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혐의로 받아왔던 형사재판에 대한 최종심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확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의 재판을 받아야 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며 "납득할 만한 근거 없이 특정인의 제청을 요구한다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을 자기가 선택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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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제청 사태로 촉발된 청와대와 사법부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이 일정 부분 침해됐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사실상 제청 반려를 시사했다. 여당 역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 법원조직법을 개정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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