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새벽 배송) 제한 폐지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형마트가 쿠팡 등 온라인 쇼핑 공룡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새벽 배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 편익 증진을 내세우면서는 구시대적인 '낡은 규제'라고까지 몰아세운다.
하지만 영업시간(새벽 배송) 제한 폐지 주장들의 대부분은 필요 규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은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된 제도다.
사실 현재도 대형마트들은 별도 물류센터 설립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새벽 배송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신세계(SSG.COM)가 김포, 용인 등에 위치한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NEO)를 거점으로 새벽 배송 시장에 진출했고, 새벽 배송을 희망하는 소비자들은 이미 쿠팡, 컬리, SSG, 네이버쇼핑, 오아시스마켓, 배달의민족 B마트 등을 통해 필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새벽 배송 시장에서의 경쟁도 상당하다. 시장에 진입했던 롯데온, GS프레시, 헬로네이처 등은 물류센터 건립과 콜드체인 유지 그리고 야간 인건비 부담 때문에 새벽 배송 서비스를 포기한 상태다.
"'소상공인 보호 = 소비자 편익 저해' 논리, 프레임 전환이자 낙인"
상황이 이러함에도 대형 유통기업들이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기존 체제를 고수하며 규제 폐지만을 부르짖는 것은 그동안의 소상공인 보호 정책을 '소비자 편익을 저해하는 무용한 것'으로 낙인찍으려는 프레임 전환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100kg이 넘는 헤비급 선수(대형마트)가 헤비급 챔피언(쿠팡)에게 밀려 성적이 좋지 않자, 갑자기 경기 규칙을 바꿔서 40kg짜리 플라이급 선수(골목상권 소상공인)들과 싸우겠다고 떼를 쓰는 꼴이다. 대형마트들이 진정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면 온라인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야지 애꿎은 경량급 선수들의 보호 장구를 벗기자고 해서는 안 된다.
해외 선진국들 역시 자국의 유통 생태계 다변화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각국 특성에 맞게 강력하고 촘촘한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확장이 지역 상권을 파괴한다고 보고 '라파랭 법(Loi Raffarin)'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상점 개설 시 지자체의 엄격한 허가를 요구한다. 허가 대상 규모가 당초 300m2에서 1,000m2로 완화되긴 했지만 상권 관리를 통해 소상공인의 생존권도 함께 보호해 나가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상공인 생존권 함께 지키는 해외 사례 등 참고해야"
독일도 바이에른 주 등에서는 '영업시간제한법(Ladenschlussgesetz)'을 통해 전통적으로 일요일과 공휴일의 상점 영업을 금지한다. 평일 야간 영업도 제한 한다. 근로자들의 휴식권 보장뿐만 아니라 거대 자본이 24시간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골목상권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숲에 소나무만 가득 차면 산불이나 병충해에 숲 전체가 전멸한다. 다양한 풀과 야생화가 함께 자라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된다. 유통 시장도 마찬가지다. 거대 유통망이 편리함을 앞세워 골목상권을 완전히 잠식하면, 초기에는 소비자 편익이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네 구멍가게, 야채가게, 반찬가게가 모두 사라진 뒤 거대 기업들이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거나 서비스를 줄이면 소비자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사라진 시장은 결국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과 선택폭 축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골목상권 규제 때문이 아니라 급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으로의 전환 지연과 경영 전략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다. 본질적인 경영난의 책임을 소상공인 보호 규제로 돌리며 사회적 약자의 생명 줄을 끊으려 해서는 안 된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은 '낡은 규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유통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브레이크'다. 대형 유통기업들이 진정한 상생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기존 상권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상생 모델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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