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조정래가 마지막으로 묻는다…사랑은 무엇을 견디게 하나
등단 56년 만에 사랑 전면에 내세운 '서리꽃'
"단순한 사랑 이야기 아니다"…돈·가부장제에 맞서는 두 사람
한 독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을 쓰고 전국을 돌며 독자들을 만나던 때였다. 조정래는 순간 멈칫했다고 했다. 그 질문은 20년 가까이 묵었다. 그 사이 그는 중국 자본주의를 썼고, 교육을 썼고, 국가를 썼고, 돈을 썼다. 그리고 여든셋이 된 올해, 마침내 사랑을 썼다.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조정래는 3년 만의 장편 '서리꽃'을 앞에 두고 그 오래된 질문부터 꺼냈다. 1970년 등단해 56년 동안 수많은 소설을 냈지만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소설을 쓸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을 마무리하며 독자들이 원했던 사랑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후배 소설가 김훈이 언젠가 '태백산맥'에도 춘향전을 능가하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나 조정래가 사랑을 쓰겠다고 해서 갑자기 연애소설가가 된 것은 아니다. '서리꽃'에서 시를 쓰는 철학도 이재이와 미술학도 윤소인은 대학 시화전에서 만난다. 윤소인은 이재이의 시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변주한 그림을 붙인다. 말보다 시와 그림이 먼저 서로를 알아본 셈이다. 하지만 재이는 사업가 아버지의 뜻에 떠밀려 미국으로 간다. 5년 뒤 돌아와 만난 소인은 집안의 몰락과 빚, 병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다.
여기까지라면 익숙한 순애보다. 조정래는 그다음부터 익숙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연인을 갈라놓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다. 돈이다. 가난한 여자를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는 부자 아버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욕망, 딸 셋을 낳았다는 이유로 위태로워지는 장남의 자리. 사랑 한가운데 재벌가의 후계질서와 남성 중심 가족제도가 들어선다. 재이는 아버지의 세계에 편입되는 대신 형과 은밀한 거래를 해 소인의 빚과 치료비를 마련한다. 사랑을 쓰는데 자본과 계급, 가부장제가 따라 들어왔다. 조정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이날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슬픔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엇이 그 사랑을 슬프게 만드는가. 그는 천민자본주의의 탐욕과 비인간성이 건강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 속에서 사랑마저 파괴한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파괴된 뒤다. 인간은 사랑을 다시 만들 수 있는가. 그는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리꽃'은 조정래 문학의 변신이라기보다 회귀에 가깝다. '태백산맥'에서 이념이 사람을 갈랐고, '아리랑'에서 제국이 삶을 짓밟았으며, '한강'에서는 개발과 권력이 개인을 몰아붙였다. 최근작 '황금종이'가 돈을 욕망하는 인간을 좇았다면, '서리꽃'은 그 돈의 세계 반대편에 무엇을 놓을 것인지 묻는다. 그가 이번에 꺼낸 답이 사랑이다. 역사를 떠나 사랑으로 간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두 사람에게 역사를 다시 들이댄 셈이다.
사랑 이야기를 쓰는 방식도 여전히 조정래였다. 한 편의 시와 고흐의 그림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위해 그는 프랑스 파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갔다. 오르세미술관과 반고흐미술관, 크뢸러뮐러미술관을 직접 돌았다. 미술책 몇 권을 읽고 장면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팔순의 작가는 현장을 택했다. 네 권의 취재수첩에 메모와 그림을 남겼다. 그 여행은 소설 속 두 연인의 여행이 됐다. 전 2권 600쪽, 원고지 약 1690매의 사랑소설에도 '태백산맥'을 쓰던 취재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목 '서리꽃'도 그 취재 과정에서 나왔다. 반 고흐의 그림을 수첩에 옮겨 그리던 조정래는 겨울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서리꽃을 떠올렸다. 차가운 밤에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꽃. 소설 속 사랑 역시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작품을 구상하던 작가 자신에게 먼저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왔다.
조정래는 지난해 복부대동맥에 이상이 생겨 수술대에 올랐다. 집필은 예정했던 때보다 몇 달 늦어졌다. 수술 뒤 기력이 떨어진 상태로 글을 쓰다 후반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몸살을 앓았고, 결국 탈고도 계획보다 두 달가량 늦어졌다. 죽음과 맞닿은 몸으로 삶을 붙드는 사랑을 쓴 셈이다.
그날 간담회에서 조정래는 아내 김초혜 시인의 이야기도 여러 번 했다. 두 사람은 동국대 국문과 동기로 만나 1967년 결혼했다. 내년이면 결혼 60년, 회혼이다. 평생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해온 작가가 첫 사랑소설을 내놓는 자리에서 결국 가장 오래 이야기한 사랑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도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서리꽃'은 장편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정래는 지금껏 장편을 "100m 달리기처럼" 투쟁하듯 써왔다며 이제 몸에 조금은 자유를 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펜을 놓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소홀했던 단편을 다시 쓰고 수상록도 쓰겠다고 했다. 지난해 수술을 겪은 뒤에도 그의 마지막 소원은 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생을 마치는 것이다.
AI 이야기가 나오자 태도는 더 단호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올 수 없다고 봤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태백산맥'에서 출발해 56년을 달려온 소설가가 마지막 장편에서 고른 단어는 거창한 역사도, 국가도, 돈도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그러나 조정래에게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숨어드는 일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과 질병이 한 인간을 무너뜨릴 때 다른 한 인간이 끝까지 곁에 남는 일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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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든셋의 조정래가 마지막 장편에서 묻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빠르고 쉽게 대체되는 시대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함께 견딜 수 있는가. '서리꽃'은 그 질문에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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