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어른이를 위한 연극…웃고 떠들다 삶의 무게를 마주하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동창들 '더 컴업펀스'
컬럼바인·9·11·전쟁을 지나 마흔이 된 세대
'토니상 연극 작품상' 제이콥스-젠킨스 작품
"우리 크리스티나한테 엉덩이 까자. 깜놀할 거야." "왜 우리가 크리스티나한테 엉덩이를 보여줘야 돼? 말도 안 돼." "놀라 자빠질 테니까!"
짓궂은 장난이 통하는 이유는 이들이 2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이기 때문이다. 예상과 다르게 크리스티나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함께 등장한 프란시스코가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보며 "운동 좀 했나 봐? 탐스러운데~"라며 농담을 던지자, 엉덩이를 까 보였던 에밀리오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바지를 다시 추스른다.
졸업 후 20년 만에 다시 만난 남녀 고교 동창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더 컴업펀스'의 분위기는 시종 유쾌하다. 짓궂은 장난과 노골적인 농담이 오가고, 재미없는 농담이나 쓸데없는 말이 나오면 옆에 있던 친구가 "넥 슬라이스"를 외치며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다. 치기 어린 시절의 행동을 떠올릴 때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이내 "귀엽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시대는 이들의 아름다운 학창 시절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생채기를 남겼다. 에밀리오, 케이틀린, 우르술라, 크리스티나, 프란시스코 다섯 명의 동창이 20년 만에 재회한 해는 2022년이다.
이들은 2002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중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1999)과 9·11 테러(2001)를 겪었고,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에는 세계 금융위기(2008)의 혼란을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컬럼바인, 9·11, 전쟁, 전쟁, 또 전쟁, 그리고 트럼프, 그러고 나선 코로나, 이번에는 대법원에서 임신중절 권리 법안까지 폐기했어. 이게 다 이제 막 마흔이 되는 인생에 일어난 일이야."
우르술라는 코로나19로 할머니를 잃었다. 프란시스코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 이면에 이라크전쟁 파병 당시 겪은 참혹한 기억으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다.
희곡을 쓴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는 1984년생으로 극 중 인물들과 비슷한 또래다. 극의 대사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풀어놓은 듯 생생하다.
"너네, 컬럼바인 총격 사건 기억나? 그 사건 터지고 애들이 갑자기 휴이한테 친절해졌잖아. 다들 겁먹은 것처럼." "너만 그랬던 것 같은데." "아니! 다들 벌벌 떨었어! 걔 필(feel)이 완전 컬럼바인이었잖아. 딱 그쪽 과였어."
학창 시절의 아픈 기억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들은 시련을 통해 성찰하고 성숙했을까. 40대가 된 동창들의 대화에서는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읽힌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오늘날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드러난다. 케이틀린의 남편은 트럼프 지지자다. 에밀리오는 케이틀린에게 "보수 꼴통 음모론자 당신 남편"이라고 일갈한다. 케이틀린은 난처한 표정으로 "남편이 트럼프 지지자이긴 하지만 직접 국회를 습격한 건 아니었어"라며 에둘러 남편을 감싼다.
작가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극에는 다섯 명의 동창들 외에 숨겨진 존재가 하나 더 등장한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다섯 명의 등장인물 몸에 차례로 빙의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정 인물에게 죽음이 빙의하는 순간 다른 인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동작을 멈춰 연극적 재미를 더한다. 죽음이 빙의한 인물만 움직이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극이 시작된 직후 에밀리오에게 빙의한 죽음이 관객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첫인사는 서늘하다. "오! 안녕하세요. 우리 전에 만난 적 있는데 기억… 안 나시겠죠." 오싹한 죽음의 대사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절 한 번 보고 나면 그런 일이 아예 없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게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오래 가지 않거든요."
죽음이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 때문이다. "왜인진 몰라도, 전 이 생명체가 참 흥미로워요. 지 의지대로 움직이는 줄 아는 이 정교한 기계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다섯 명의 동창들처럼 관객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지던 죽음은 마지막에 간절한 당부를 남긴다. "사람들이 종종 제 일이 '해결책'이라고 오해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중 그런 선택을 고려하고 있거나, 그런 충동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분이 있다면, 부탁인데요, 다시 생각해주세요. 그런 선택은 상상도 못할 분노와 후회를 남깁니다. 대부분은 그 순간의 충동만 이겨내면 괜찮아집니다. 버티세요, 지나갑니다."
더 컵업펀스는 40대가 됐지만 여전히 10대이고 싶은 '어른이'들을 위한 연극이다. 시끌벅적하고 유쾌하지만 웃음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대사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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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스-젠킨스는 주목받는 미국 극작가다.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지난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연극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목적(Purpose)'이 제이콥스-젠킨스의 작품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적절한(Appropriate)'은 2024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연극 부문 최고 재공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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