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선불당서 각계 조문…25일 영결식
1994년 종단개혁 주도·봉은사 재정 공개
올해 초 조계종과 9년 갈등 마무리
이재명 대통령·문재인 전 대통령 등 각계 애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된 명진스님의 빈소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의 한복판에 섰고 봉은사 주지 시절 1000일 기도와 사찰 재정 공개를 이끌었던 그는 종단과 정치권을 향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온 '행동하는 수행자'였다. 2017년 제적 이후 이어진 종단과의 오랜 갈등을 올해 초 마무리한 지 반년여 만의 입적이다.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에서 입적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빈소가 23일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에서 입적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빈소가 23일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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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불교계에 따르면 명진스님의 장례는 불교계와 시민사회 등이 함께하는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전날 봉은사 선불당에 빈소가 마련된 뒤 불교계 관계자와 신도,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10시 봉은사에서 엄수되며 이후 스님의 출가 본사인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에서 다비식이 진행된다.

명진스님은 지난 22일 오전 9시38분께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10시28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이다. 발견 당시 마스크와 스노클, 다이빙수트, 핀 등을 착용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제주에서 프리다이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발상좌 유병문씨는 발견 지점 등을 근거로 깊은 바다에서 다이빙하던 중이 아니라 바다수영을 하다 심정지가 왔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외상이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아 부검은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군 복무 중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송광사·해인사·봉암사·용화사·상원사 등의 선방에서 20년 넘게 수행하며 40안거를 성만했다.

수행자의 삶이 사회참여로 확장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종단과 시민사회가 함께 작성한 행장에 따르면 1985년 해인사에서 수배 중이던 대학생들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담은 영상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듬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불교의 자주성을 요구한 '9·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에 참여했고, 1994년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의 3선 연임에 반대해 벌어진 조계종 개혁 당시 개혁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등을 지냈다.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2006년 봉은사 주지를 맡으면서다. 취임 직후 "절은 절답게"를 내걸고 그해 12월부터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주지 재임 중에는 2007년 사찰의 예산과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고, 종무회의에 신도들을 참여시키는 등 투명한 사찰 운영을 추진했다. 1000일 기도 기간 산문을 벗어난 것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 때였으며, 기도를 회향한 뒤 처음 찾아간 곳은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23일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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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싸고 총무원과 대립하면서 갈등은 본격화됐다. 명진스님은 당시 정치권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그해 11월 주지 임기를 마치고 봉은사를 떠났다. 이후에도 종단 운영과 당시 정부를 비판했다. 2017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조사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에 명진스님의 동향 파악을 지시하고, 국정원이 온라인상 비판 여론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명진스님이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나는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확인되지 않았다.


종단과의 갈등도 길게 이어졌다. 조계종은 2017년 명진스님에게 최고 수위 징계인 제적 처분을 내렸고, 명진스님은 2023년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2심에서 명진스님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1월 항소심 판결 이후 조계종과 명진스님 모두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9년 가까이 이어진 갈등은 마무리됐고 승적도 회복됐다. 조계종은 당시 "과거의 갈등을 치유하고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입적 소식에 종교계와 정치권, 시민사회의 추모도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눈다"며 평등과 평화, 자비를 실천한 고인의 삶을 기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명진스님이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했던 삶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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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성환 시민사회수석은 23일 오후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24일에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표단,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고인이 공동후원회장을 맡았던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전국시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사회적 약자의 곁을 지키고 불교계 개혁에 앞장섰던 그의 행보를 기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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