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건의로 개정 추진
청년층 반발에 방향 틀어
정부가 고시원(다중생활시설) 내 욕조 설치를 허용하려다 여론 역풍을 맞고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전날 오후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 행정예고(8월12일~8월31일) 과정에서 고시원 이용자, 관련 협회, 언론보도 등을 통해 욕조 설치 완화 규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며 "해당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무허가 원룸'처럼 쓰는 걸 막기 위해 2015년 이후 금지된 고시원 욕조 설치를 다시 허용하고,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애는 내용이 골자다. 욕조 설치가 의무는 아니다. 운영자가 원하면 방에 놓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국토부는 욕조 설치를 허용하려 한 이유에 대해 "중소기업 규제개선 건의에 따라 고시원의 다양한 운영 형태를 고려해 안전과 무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침대 놓기도 빠듯한데 욕조?… "월세 인상 명분" 우려
개정안이 알려지자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침대와 수납공간을 놓기도 빠듯한 1.5~3평 고시원 방에 욕조부터 허용하는 발상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용 5~8평 크기의 일반 소형 원룸조차 공간 효율을 높이려 욕조를 빼는 주거 트렌드와도 대비된다.
청년 1인 가구의 실제 생활 패턴과도 맞지 않았다. 1인 가구는 샤워실 사용 빈도가 훨씬 높고, 욕조는 청소와 물관리 부담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좁은 방에 욕조가 들어서면 습기와 곰팡이가 생겨 주거 환경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여기에 월세 인상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정부가 고시원 거주자의 생활보다 운영자의 수익성을 먼저 살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중소기업 규제 개선 건의를 계기로 개정에 나섰지만 건의 주체와 입주자 수요 조사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이다. 주차장 확보, 소방 기준 등 엄격한 주택 건축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욕조까지 허용하면 방 안에서 취사만 불가능할 뿐 사실상 원룸 수요를 흡수하는 고급형 임대 상품으로 변질할 수 있다. 규제는 덜 받고 임대료는 높여 받으려는 운영자들의 '꼼수'를 정부가 합법화해 주는 격이다.
월세 100만원 '프리미엄 고시원'…사라지는 싼 방
실제 강남, 서초, 대학가 일대에는 월세 70만~100만원을 웃도는 이른바 '프리미엄 고시원(스테이)'이 성업 중이다. 개별 세탁기, 전자레인지, 침대, 냉장고, 샤워실을 갖추고 원룸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욕조를 추가해 상품성을 높이면 월세를 더 올릴 여지가 생긴다.
국토부 누리집 행정예고 의견란에도 이 같은 실태를 꼬집는 글이 올라왔다. 한 의견 제출자는 "개정안은 현장 생태계를 모르는 최악의 탁상행정이므로 전면 철회를 요구한다"며 "현재 일부 고시원들은 도배만 새로 한 채 '스테이'라는 간판을 달고, 밥, 라면 기본 제공마저 없애면서 보증금과 월세를 폭등시키고 있다"고 했다. 욕조 허용과 책상 설치 의무 폐지가 또 다른 가격 인상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불법 가격 담합 단속, 임대료 상한제 도입, 방음 규제 강화 등 실질적인 서민 주거 안정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고시원은 원래 공무원, 사법시험 준비생이 쓰는 학습실이었다. 방마다 책상을 놓도록 한 규정도 여기서 나왔다. 지금은 저렴한 월세를 찾는 1인 가구가 주 이용층이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청년, 일용직 노동자의 '최후 주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앤 건 이러한 용도 변화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 주택에 적용하는 최소 면적, 채광, 환기 기준은 빠져 있다. 고시원 고급화 트렌드가 확산하고 임대료 하한선이 올라가면, 정작 싼 값에 한 평 반짜리 방이 절실한 주거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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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앞으로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를 완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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