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차도 어떤 전기로 충전하느냐에 따라 탄소배출 달라
전기 SUV·하이브리드·폐배터리가 바꾸는 환경 성적표
서울에서 충전한 전기차와 프랑스에서 충전한 같은 전기차의 환경 성적표는 같지 않다. 전기차가 사용하는 전력을 석탄과 천연가스로 만들었는지, 원자력이나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했는지에 따라 운행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 탄소집약도가 높은 전력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면 차량이 공장을 나오기도 전에 짊어지는 탄소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저탄소 전력으로 배터리를 만들고 충전하면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줄어든다.
영국의 폐기물·재활용 전문기업 콜리스(Cawleys)의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시설에서 작업자들이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를 해체하고 있다. 폐배터리에서 회수한 소재를 새 배터리에 활용하면 원료 채굴·정제에 따른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다. Cawleys 제공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자동차의 동력원을 전기로 바꾼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발전소와 전력망, 배터리 공장과 차량 크기, 운행 방식과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모두 연결돼 있다.
같은 전기차도 어떤 전기로 충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전기차에는 배기관이 없지만 충전할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된다. 전기차가 직접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더라도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한 탄소는 전기차의 운행 배출량에 포함된다.
석탄발전은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도 탄소배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과 태양광·풍력은 발전소와 설비의 생산·건설까지 고려하면 생애주기 배출량이 존재하지만 화석연료 발전보다 탄소집약도가 낮다.
이소라 한국환경연구원 순환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같은 전기차라도 석탄화력으로 충전하면 원자력·신재생에너지보다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며 "국내처럼 화석연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력 구조에서도 현재 시점 기준 전기차가 이미 유리하며,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진행될수록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은 구조적으로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실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ICCT의 2025년 분석에서 EU 전력망을 기준으로 한 전기차의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1년 분석보다 24% 낮아졌다. 연구진은 전력망의 탈탄소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유럽교통환경연맹(T&E)의 요안 짐베르 선임 데이터 분석가가 담당한 전 과정 분석에서도 전력의 차이는 극명하다. 중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장착하고 석탄 의존도가 높은 폴란드에서 운행하는 전기차도 휘발유차보다 생애주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7% 적었다. 배터리를 스웨덴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운행하면 배출량이 83%까지 낮아진다.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력이다. 최원재 이화여대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 교수는 "무엇보다 전력의 배출계수 영향이 가장 크다"며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나라에서도 '언제 충전하느냐'가 변수
같은 전기차를 같은 나라에서 운행해도 언제 충전하느냐에 따라 배출량이 달라질 수 있다. 시간대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원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주하 이화여대 연구원과 김자륭 한국교통안전공단 미래차연구처 처장, 최 교수 등이 2024년 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논문집에 발표한 '충전 시점에 따른 전기차의 well-to-wheel 온실가스 배출량 분석'은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발전원 구성이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려준다. 연구진은 2022년 국내 시간대별 전원믹스를 적용해 전기차의 웰투휠 배출량 변화를 계산했다.
연구 결과 시간대별 전원믹스를 고려하지 않은 평균적인 경우와 비교해 전기차의 웰투휠 온실가스 배출량은 충전 시점에 따라 최대 16% 높거나 28%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전기차라도 언제 충전하느냐에 따라 환경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향후 '스마트 충전'이 단순한 전기요금 절감 기술을 넘어 탄소감축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로 충전을 유도하고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는 충전을 늦추는 식이다.
전기차는 전력망에 새로운 수요를 더하는 동시에 충전 시점을 조절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 역할도 할 수 있다.
전기 SUV냐 하이브리드냐…차종·크기도 성적표 바꿔
전기차의 환경성을 결정하는 또 다른 변수는 차량 크기다.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소형 전기차보다 큰 배터리와 더 많은 철강·알루미늄 등의 소재가 필요하다. 생산 단계의 온실가스가 늘고 무거운 차체를 움직이기 위한 전력 소비도 커진다. '전기차'라는 이름표가 같다고 환경 성적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IEA의 분석은 그 차이를 숫자로 보여준다. 2023년 판매된 전기 SUV와 주행거리가 비슷한 중형 전기차를 비교했더니 SUV의 배터리가 평균 25% 더 컸다. 전기 SUV의 전력 소비량도 다른 전기차보다 평균 20% 많았다.
차량 크기를 줄였을 때 절약할 수 있는 자원도 상당하다. IEA는 2023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 SUV를 모두 중형 전기차로 대체했다고 가정하면 주행거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약 60GWh의 배터리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필요한 원료를 환산하면 리튬 약 6000t, 니켈 3만t, 코발트 약 7000t, 망간 8000t 이상에 해당한다.
전기차도 크기가 커질수록 더 많은 배터리와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비교는 더 복잡하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한다. 순수 전기차보다 배터리가 작아 생산 단계의 탄소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고, 회생제동과 효율적인 엔진 운전으로 기존 휘발유차보다 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최 교수 연구팀의 국내 승용차 분석에서도 차량 생산·폐기를 포함하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전 과정 온실가스 배출량 차이가 좁아졌다. 내연기관차(ICEV)는 운행 단계의 배출량이 컸고, 전기차(BEV)는 직접적인 주행 배출은 없지만 전력 생산과 차량·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하이브리드보다 낮은 쪽에 형성돼 있다"면서도 "그 차이가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100대 0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전력망이 탈탄소화될수록 운행 단계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도 연비가 향상되거나 저탄소 연료 사용이 확대되면 배출량을 낮출 여지가 있다.
최 교수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비교는 앞으로도 실제 사용하는 연료와 자동차의 생산·활용·폐기 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비교해야 한다"며 "현실을 반영한 전 과정 분석을 통한 객관적인 비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IEA는 세계 평균 기준 2023년 판매된 중형 전기차의 생애주기 배출량이 동급 하이브리드차보다 40% 이상 낮다고 분석했다. 다만 인도처럼 석탄 의존도가 높고 연간 주행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곳에서는 그 차이가 10% 미만으로 좁아질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전기차냐 하이브리드냐'는 질문에 자동차의 이름만 보고 답을 내려서는 안 된다. 차량 크기와 배터리 용량, 전력믹스, 연비, 주행거리와 차량 수명이 모두 계산에 들어가야 한다.
폐차 뒤에도 끝나지 않는 전기차의 환경 성적표
배터리의 수명이 끝난 뒤 무엇을 하느냐도 환경 성적표를 바꾼다. 폐배터리에서 리튬·니켈·코발트 등을 회수해 새 배터리에 다시 투입하면 광물 채굴과 정제 과정의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배터리 원료 자체의 영향도 적지 않다. IEA에 따르면 니켈·망간·코발트(NMC) 배터리의 생애주기 배출량 가운데 핵심 광물의 가공 과정이 약 55%를 차지한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배터리 제조 단계가 전체 배출량의 거의 50%에 달한다. 사용 후 배터리에서 회수한 원료를 새 배터리에 다시 투입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네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Ultium Cells)가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사이클(Li-Cycle)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맺고 폐배터리를 재활용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하지만 재활용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배터리를 운송·해체하고 소재를 분리·정제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며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감축 효과도 달라진다.
최 교수는 "폐배터리 재활용은 재활용 기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달라질 수 있다"며 "차량 경량화도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모두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의 환경성을 높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전력망의 탈탄소화를 꼽았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량 관점에서는 전력망 탈탄소화가 가장 근본적이고 파급력이 큰 요인"이라며 "자동차·배터리 업계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배터리·소재 생산공정 개선과 폐배터리 재활용·안전관리 체계 구축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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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완벽한 친환경차'가 아니다. 만들어지고 달리고 폐기되는 동안 탄소를 남긴다. 다만 그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공간이 내연기관차와 다르다. 내연기관차의 탄소는 주로 배기관에서 쌓이기만 한다면, 전기차의 탄소는 배터리 공장과 발전소, 전력망과 재활용 시설에서 줄어들 여지가 크다. 전기차 시대의 진짜 승부가 도로 위가 아니라 자동차 밖에서 벌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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