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왜 스스로 되돌아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잠긴 문을 열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던 기존 연구와 다르게 실제로 문을 잠그는 '핵심 잠금장치'가 무엇인지를 찾아낸 셈이다."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처럼 비정상적인 상태로 굳어진 세포를 본래 상태로 되돌리는 데 관문이 될 '분자 잠금장치'를 규명, 암·노화 치료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KAIST는 바이오 및 뇌 공학과 조광현 교수 연구팀이 세포 안에 분자 네트워크에서 생긴 상태 변화를 고정하는 핵심 회로를 규명한 동시에 세포를 이전 상태로 되돌릴 원천 제어 기술 '루트(ROOT)'를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세포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성질과 기능이 변화한다. 또 자극이 사라져도 변화된 상태대로 유지(비가역성)되기도 한다. 세포 안에서 특정 분자들이 서로를 계속 활성화하면서 바뀐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다.
이 같은 비가역성은 세포가 특정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생명현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지만, 반대로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이동·침투하는 성질을 갖게 되는 상피-간엽 전이처럼 질병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때 세포 안에서 상태 변화를 유지하는 회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특히 어떤 분자가 다른 분자를 활성화하고, 그 분자가 다시 처음 분자를 활성화하는 '양성 되먹임 회로(Positive feedback loop)'가 수천 개 이상 존재한다. 두 개의 마이크를 서로 맞댔을 때 작은 소리도 서로 증폭돼 커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문제는 외부 자극에서 변화가 시작됐더라도 세포 내부 분자가 상대 분자를 활성화하면서 자극이 사라진 후에도 변화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도 이전에는 수많은 회로 중에 어떤 회로가 실제 세포를 '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지를 가려내는 게 어려웠다.
연구팀이 개발한 '루트'는 세포 안에 분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컴퓨터 논리 모델로 구현해 외부 자극이 발생했을 때부터 사라지는 과정 전체를 모사, 수많은 회로 중 세포를 변화된 상태로 고정하는 핵심 회로의 집합(비가역성 커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흡사 복잡하게 얽힌 수천 개의 전선 중 문을 실제 걸어 잠그는 전선만 골라내는 것과 같다. 세포가 왜 본래 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분자적 잠금장치'를 찾아낸 셈이다.
연구팀은 잠금장치를 찾아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이용해 세포의 상태를 본래대로 되돌리는 '리셋 제어(Resetting control)'?와 '역전 제어(Reversing control)'?도 제시했다.
리셋 제어?는 세포의 비가역적 성질 자체는 그대로 두면서 현재의 세포만 변화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 잠금장치는 그대로 두되 잠긴 문을 열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과 비슷하다.
역전 제어는 비가역성 원인을 제거해 세포가 서로 다른 상태 사이를 보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한다. 잠금장치 자체를 해제해 문을 다시 여닫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실제 이들 기술을 B세포 분화, 폐암의 상피-간엽 전이,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 기반의 장세포(Enterocyte) 및 베타세포 분화 등 생물학적 모델에 적용했을 때 세포의 상태와 분화를 결정하는 주요 인자와 일치하는 원인 회로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게 가능했다.
조 교수는 "연구팀이 개발한 '루트'는 비가역성의 원인이 되는 분자 회로를 탐색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며 "이를 통해 원인 회로를 찾아 제어했을 때 생명현상이 가역화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 기술(루트)은 범용적으로 활용이 가능해 향후 암과 노화 등에서 비정상적으로 굳어진 세포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치료전략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수주 한 건도 없는데 "1조 매출 내겠습니다"…주주...
한편 이번 연구에는 KAIST 바이오 및 뇌 공학과 김종완·장성훈 박사가 공동 제1 저자, 이종훈 박사·코빈 호퍼(Corbin Hopper) 박사과정 학생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18일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