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약에 몰린 보상…분급제로 유지·관리 유인 높여
유통비용 높은 보험산업…생산성 개선 더뎌
수수료 경쟁 줄이고 '비가격 경쟁력' 키워야

그간 보험 영업은 기존 계약을 관리하기보다 신계약을 확보하는 데 더 큰 보상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달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까지 1200%룰이 확대 적용됐지만 시행 초기 현장에서는 수수료 경쟁이 완전히 잦아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판매수수료 분급제를 추가로 시행해 초년도 수수료 한도를 제한하는 데서 나아가 계약 초기에 보상을 몰아주는 방식을 손볼 예정이다. 두 제도가 함께 작동하면서 신계약 확보에 치우친 판매 경쟁이 계약 유지와 생산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뀔지 주목된다.


1200%룰 이어 분급제…보험 영업 보상체계 손질

[1200%룰 두 달 현장은]신계약 따내기보다 오래 지키기…분급제가 바꿀 보험 영업
AD
원본보기 아이콘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2027년 1월부터 보험설계사 판매수수료에 4년 분급 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이후 2029년부터는 분급 기간을 7년으로 확대한다. 보험계약 체결 뒤 1년 안에 상당 부분 지급되던 판매수수료를 계약 유지기간에 걸쳐 나눠 지급한다. 기존에는 새 계약을 계속 따내는 것이 설계사의 소득을 높이는 데 유리했다면 앞으로는 이미 판매한 계약을 유지·관리하는 것에도 경제적 유인이 생기는 셈이다.

금융당국이 수수료 지급구조를 손보는 배경에는 선지급 중심의 보상체계가 보험업계의 과당경쟁을 키웠다는 판단이 있다. 보험사는 GA에 판매수수료와 시책을 제시하고 GA는 다시 높은 보상을 앞세워 설계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신계약을 늘려왔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고액 스카우트' 경쟁이 확대됐다. 실적이 좋은 설계사를 데려오기 위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정착지원금 등으로 보전해주고 신계약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높은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가 승환계약이나 고아계약 등 부작용을 키웠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이와 관련해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은 "가입 고객에 대한 유지서비스는 소홀히 하면서 신계약 실적만을 위해 과도한 수수료·시책, 설계사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분급제가 단기 매출을 좇는 '사냥꾼형' 설계사보다 고객의 계약을 끝까지 관리하는 '농부형' 설계사를 육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1200%룰과 분급제가 함께 작동해야 판매수수료 개편의 효과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GA 설계사까지 적용된 1200%룰이 초년도 수수료의 크기를 제한했다면 분급제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보상이 발생하는 시간구조를 바꾸는 제도라는 설명이다. 1200%룰 확대와 분급제는 같은 판매수수료 개편안에 포함됐지만 판매채널의 준비와 설계사 소득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제도 간 시행 시차에 따른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200%룰과 분급제, 총수수료 한도가 같이 가야 제도가 완성되는 구조인데 시행 시차가 생긴 점은 아쉽다"면서도 "내달부터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분급제 관련 준비와 가이드 마련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년도 지급 한도를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약 유지기간에 걸쳐 보상을 나누는 구조까지 갖춰져야 신계약에 치우친 판매 관행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나눠 지급하면 GA·보험사 영향은

[1200%룰 두 달 현장은]신계약 따내기보다 오래 지키기…분급제가 바꿀 보험 영업 원본보기 아이콘

분급제가 시행되면 높은 선지급 보상을 활용해온 GA의 설계사 영입 방식에 변화가 예상된다. 보험사로부터 받는 판매수수료가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면 정착지원금과 운영비 등 초기 자금을 운용할 여력이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 GA일수록 제도 변화에 따른 부담이 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판매수수료 규제가 신계약 경쟁 완화로 이어질 경우 신계약비 부담을 덜고 계약 수익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신계약 경쟁이 줄어 승환계약과 신계약비 지출이 감소하면 마진배수가 상승하고 기존 계약의 계약서비스마진(CSM)이 줄어드는 폭도 축소돼 전체 CSM 잔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판매수수료 분급 등의 정책이 이를 더욱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급제는 해약환급금준비금 부담과도 연결된다. 판매수수료 지급이 뒤로 분산되면 아직 지급하지 않은 수수료가 보험부채에 남아 준비금 신규 적립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분급 기간 동안 미지급 수수료가 시가 보험부채에 남아 부채 규모가 그만큼 높게 유지되면서 해약환급금준비금 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도 줄어든다"며 "자본 증가는 중립적이고 준비금 신규 적립만 감소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어 "적립 이연 효과는 영구적인 축소가 아닌 시차 효과로, 유예된 수수료가 지급될 때마다 미뤄졌던 적립은 뒤따라 이뤄진다"며 "분급 도입 구간에는 준비금 순증 둔화가 나타나지만 미지급 수수료 잔액이 더 늘지 않는 시점부터 이연 효과가 사라지고 순증은 종전 추세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7년 4년 분급, 2029년 7년 분급의 두 차례 분급 기간 확대로 적립 억제 구간이 중첩돼 종전의 준비금 적립 추세로 복귀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수료 경쟁 줄이고 '비가격 경쟁력' 강화 나선 보험사

[1200%룰 두 달 현장은]신계약 따내기보다 오래 지키기…분급제가 바꿀 보험 영업 원본보기 아이콘

판매수수료 규제가 본격화하면 보험사들은 수수료에 의존해 판매를 늘리기보다 설계사의 생산성을 높여 영업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수료를 더 많이 지급해 판매를 끌어올리는 데 제약이 커지면 상품 경쟁력과 영업지원 등 비가격 경쟁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높은 유통비용과 정체된 생산성 등을 글로벌 보험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손해보험에서는 보험료의 10~25%, 생명보험에서는 초년도 보험료의 최대 80%가 수수료와 계약 획득 비용으로 들어가는 반면 비용 효율성은 장기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맥킨지는 복잡한 보험상품 판매에서 인공지능(AI)이 상품 설명 및 고객관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판매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설계사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와 고객을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판매수수료 규제 강화에 대응해 AI를 활용한 비가격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회사는 최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7년 판매수수료 총량 규제가 도입되면 현재보다 신계약비 집행이 약 10%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생명은 "이러한 변화에서 판매가 위축되지 않도록 판매 조직 활동량을 증가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AI 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AI 판매 화법 등을 개발해서 연간 신계약 CSM 3조원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영업 과정에 전방위적인 지원을 해서 설계사 경쟁력을 차별화할 것"이라며 "GA채널에서는 AI를 활용한 영업지원 시스템 고도화와 대형 GA와의 파트너십 강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앞서 시장의 적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수수료 제도 안착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잘못되고 있으면 신속하게 시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제도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시행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D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들도 높은 수수료를 앞세운 판매 경쟁보다 한 번 맺은 계약을 제대로 관리하고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그간 선지급 중심으로 돌아가던 영업 체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