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처리 유조선, 그림자함대로 개조
전세계 해상안전 위협…환경오염 주범

편집자주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34%를 차지하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유조선 통행량이 평시 대비 10% 수준까지 급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길어도 6주 안에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던 이란전쟁이 6개월째 접어든 결과다. 전쟁 초기 배럴당 200달러 선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던 유가는 개전 이후 현재까지 70~120달러 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유가의 제한적 상승 원인으로는 '그림자함대(Shadow Fleet)'의 활약이 손꼽힌다. 이들은 국적이 불분명한 원유 밀수선단으로 '해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무리다. 전문가들은 그림자함대가 단기적으로 유가 폭등을 막는 소방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효과를 떨어뜨리고, 이란 정권에 자금을 제공해 전쟁의 장기화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달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대상으로 그림자함대를 꼽은 것도 같은 이유다. 아시아경제는 그림자함대의 실체와 미국의 제재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살펴봤다.

지난 6월 오만 해역에서 원인 불명으로 침몰한 카메론 국적 유조선인 캐롤라인 베젠기(Caroline-Bezengi)호의 모습. 러시아 그림자함대 소속 유조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 해상보안업체 암브레이 홈페이지

지난 6월 오만 해역에서 원인 불명으로 침몰한 카메론 국적 유조선인 캐롤라인 베젠기(Caroline-Bezengi)호의 모습. 러시아 그림자함대 소속 유조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 해상보안업체 암브레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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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해역에 좌초한 '캐럴라인 베젠기호(Caroline-Bezengi)'의 인양작업이 지난 13일 시작했다. 좌초된 지 두 달여 만이다. 그 동안 선박에서 나온 원유는 인근 해역 2000㎢ 에 기름띠를 만들었다. 해당 유조선의 국적은 카메론이고, 선주는 중국 상하이 해운업체로 등재돼 있다. 그러나 올해 초 러시아 본토를 출발했던 그림자함대(Shadow Fleet) 선박으로 확인됐다.


해당 선박은 2001년 건조된 선령 25년의 노후 선박이다. 폐기처분해야 할 노후 선박들이 그림자함대에 투입되면서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환경·안전 위험까지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노후 선박의 운항과 보험·안전 상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두 얼굴의 그림자함대]③불법 노후선박 공급차단 나서는 서방…"국제적 공조 필요" 원본보기 아이콘

노후 유조선 개조해 그림자함대 늘리는 러…2년새 25배 가까이 급증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노후 유조선을 그림자 함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 거래 수요는 노후 유조선의 중고 거래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최근에는 국적을 변경하거나 제3국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선박의 실소유주와 운항 목적을 숨기는 방식도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중개업체 BRS 십브로커스(BRS Shipbrokers)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중고 유조선(탱커) 거래의 약 78%가 15년 이상된 노후 선박들이었다. 같은 기간 거래된 15년 이상 탱커 262척 가운데 약 130척은 제재 대상 선박이었다. 구매자들의 국적은 중국과 그리스,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양했으며, 이 중 중국 국적 선주는 전체 중고선 중 약 26%를 매입했다.


유럽연합(EU)의 대러제재 지정 선박 숫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EU집행위원회가 지난달 23일까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러시아 그림자함대 선박 숫자는 673척으로 2024년 6월 27척 대비 25배 가까이 급증했다.

EU는 지난 4월 20차 대러제재를 통해 제재 대상 선박이라도 폐선·재활용을 목적으로 한 거래는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도록 제재조치를 일부 변경했다. 제재에 묶인 노후 선박이 그림자 시장에서 계속 운항하는 대신 폐선·재활용을 통해 합법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디미트리스 루멜리오티스 엑스클루시브 쉽브로커스 연구원은 S&P글로벌에 "폐선 조항은 건설적인 추가 조치"라며 "선박들이 재활용을 통해 그림자함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합법적인 경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노후화 된 그림자함대 선박들을 차단하는 이유는 침몰하거나 파선돼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 등이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노후화와 부실한 정비, 불충분한 선주책임상호보험(P&I)으로 그림자함대 선박들이 환경·재정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 보험 보장이 불분명한 유조선에서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방제와 보상 비용이 10억유로(약 1조6158억원)를 넘을 수 있으, 연안국 납세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셸 위즈 보크먼 윈드워드 수석 해양정보 분석가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그림자함대 선박 상당수가 바다 위에 떠다니는 녹슨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다"며 "보험에 가입한 선박이라해도 허위 국적으로 운항할 경우, 보험 보장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재에도 계속 늘어나는 그림자함대…활동영역 제한 필요

그림자함대의 근절을 위해서는 선박공급을 막는 제재와 함께 그림자함대의 운항 기반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재 강화에도 선박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활동영역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4월 허위 선박 등록과 국적 오용을 막기 위해 등록 절차에 대한 실사와 정보 확인을 강화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단순히 선박에 대한 보험증서를 제출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보험사의 존재 여부와 보장 능력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증이 강화되면 허위 서류를 이용하는 선박의 항만 이용과 운항이 어려워져 그림자함대의 활동 범위를 좁히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실효를 거두려면 미국과 EU 등 서방의 제재를 넘어 더 광범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EU가 제재와 단속을 강화하더라도 다른 국가가 그림자함대 선박의 등록을 받아주거나 항만 이용과 보험 등 관련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면 제재를 우회할 여지가 남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전체가 선박 등록과 소유·보험 정보를 공유하고 비슷한 수준의 검증 기준을 적용해야 개별 국가의 단속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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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개별 선박에 대한 제재만으로는 그림자함대 활동을 크게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재로 운항을 중단한 선박이 생기더라도 새로운 노후 선박이 다시 그림자함대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 선박과 업체를 전문적으로 식별·감시하는 '모니터링 허브'를 구축하고 의심 선박에 대한 정기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그림자함대 선박의 등록을 받아주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신규 등록을 제한하거나 기존 등록을 취소하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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