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빵과 복권, 그 사이의 균형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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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금융

금융은 원래 차갑다. 신용점수와 담보, 소득 증빙과 상환 이력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위험하다고 판단한 쪽에는 더 비싼 돈을 내민다. 김용기는 이 익숙한 질서의 효율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준이 과연 지금의 노동과 사업 현실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묻는다. 신용 이력이 짧은 청년,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담보가 부족한 소상공인, 한 번 실패한 뒤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이 정상 금융 바깥으로 밀려나는 장면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전작 '생산적 금융'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물었다면, 이번 책은 금융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아야 하는지를 따진다.


'포용'이라는 말은 자칫 선의의 언어로 미끄러지기 쉽다. 이 책이 버티는 지점은 포용금융을 착한 금융이나 시혜가 아니라, 더 정교한 위험 평가와 회복 설계의 문제로 밀고 간다는 데 있다. 현금 흐름, 대안 데이터, 관계 정보, 상품 구조와 사후 관리까지 살펴보자는 제안은 결국 "위험하다"는 말 뒤에 숨은 금융의 게으름을 겨냥한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 영국과 EU의 제도, M-Pesa와 그라민은행, 인도의 JAM 트리니티와 UPI까지 훑는 대목은 한국 금융이 이미 충분히 선진적이라는 자기만족을 흔든다. 공급액을 늘렸다는 숫자보다 차주의 금리 부담이 줄었는지, 신용이 회복됐는지, 사업이 지속됐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남는다. 금융을 따뜻하게 만들자는 책이 아니라, 덜 잔인하고 더 정확하게 만들자는 책이다. (김용기 지음ㅣ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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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복권, 그 사이의 균형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빵일까, 복권일까. 우석훈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빵은 월세와 식비, 취업과 소득처럼 당장 무너지면 안 되는 현실의 경제이고, 복권은 미래에 대한 욕망과 우연, 조금은 무모한 기대의 경제다. '88만 원 세대' 이후 20년 만에 청년을 향해 다시 쓴 이 책은 취업, 주식과 금 투자, 기후위기와 기술 변화, 직업적 꿈과 소비적 꿈, 평생 소득 가설, 부가가치와 창조적 파괴 같은 주제를 청년의 생활 감각에 맞춰 풀어간다. 목차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똑같이 "여러분은 존중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로 놓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석훈의 경제 글은 숫자를 앞세우다가도 금세 사람 사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이 책에서도 자연 이자율과 금 투자의 세계를 말하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국제기구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의 조건까지 건너간다. 그래서 이 책은 재테크 입문서라기보다 경제적 삶의 예절에 가깝다. 돈이 있으면 행복한 나라에서 돈만 좇지 않고 사는 법, 꿈을 가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폭력이 되는 시대에 그래도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법을 말한다. 저자가 책 속에서 "꿈이 있어야 행복할까요?"라고 묻는 대목은 이 책의 온도를 잘 보여준다. 빵 없이 살 수 없지만, 복권 같은 희망만 붙잡고 살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자기 삶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일이다. (우석훈 지음ㅣ북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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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미래학자 피터 디아만디스와 스티븐 코틀러는 인류가 특이점으로 가는 중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초풍요'는 물건이 조금 더 많아지는 상태가 아니다. AI, 로봇공학, 생명공학, 에너지 기술이 맞물리며 교육과 의료, 정보와 재화의 생산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지금까지 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대중화되는 문명 전환의 이름이다. 책은 '어번던스', '볼드', '컨버전스 2030'으로 이어진 기하급수 기술 시리즈의 완결판을 표방하며, AGI를 넘어 ASI가 문명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 위에서 출발한다. 20분 만에 생명을 배달하는 기술, 도축의 종말, 휴대형 MRI, AI 개인교사, 장기 재생, 휴머노이드, 합성생물학, 위성 데이터, 태양광 전력망 같은 사례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 책의 낙관은 크고 빠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설득과 과장이 계속 나란히 달린다. 인간보다 10억 배 똑똑한 존재, 노동 없는 소득, 질병 없는 장수, 결핍 없는 삶 같은 문장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저자들도 그 위험을 의식한다. 제6장 '풍요의 디스토피아'에서 플라스틱, 설계된 중독, 성장의 딜레마, 누구나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 세계, 초지능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마지막에는 존 칼훈의 유토피아 실험처럼 결핍이 사라진 뒤에도 사회적 유대가 붕괴할 수 있다는 불편한 장면을 꺼낸다. 결국 책이 묻는 것은 기술이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풍요가 목적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으로 자기 삶을 지탱할 것인가. 디아만디스식 낙관주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AI 이후의 미래를 생산성이나 투자 기회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만큼은 또렷하게 남는다.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ㅣ김태훈 옮김ㅣ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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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와 플라스틱

먼 훗날 누군가 오늘의 지층을 파헤친다면, 거기에는 영웅의 석상보다 닭뼈와 플라스틱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을지 모른다. 남종영은 이 기묘한 표본 두 개를 앞세워 인류세를 설명한다. 전 세계에서 대량 소비되는 닭의 뼈, 좀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우리가 만든 풍요가 얼마나 쉽게 폐기물의 얼굴로 바뀌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책은 '범람과 은폐의 시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인류세의 기원, 거대한 가속, 플랜테이션과 '싸구려 자연', 농업과 기후위기, 흑두루미와 인수공통감염병, 지질학자들의 인류세 부결 논쟁까지 가로지른다. 환경 저널리스트이자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참여연구원인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을 관념적 생태 담론이 아니라 현장과 학제의 접점에 세운다.


인류세를 기후위기의 다른 이름으로만 읽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저자는 "온실가스"라는 한 명의 용의자가 저지른 단독 범행이 아니라, 지층과 닭뼈, 플라스틱과 자본주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얽힌 다차원적 곤경으로 이 시대를 본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가 행성적 경계, 도넛 경제학, 기후소송, 국제 기후정치, 비인간을 위한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연스럽다. 재난은 더 이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명이 아니라, 커튼 뒤에서 무대를 움직여온 인간 활동의 결과다. '닭뼈와 플라스틱'이라는 제목의 물성이 오래 남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편하게 먹고 쓰고 버린 것들이, 결국 우리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증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종영 지음ㅣ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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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삶

어떤 책은 지식을 주기보다 한 시절을 견디게 한다. 조애너 빅스에게 문학은 그런 식의 등대였다. 열아홉에 만나 20대를 함께 보낸 남편과 별거·이혼하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어머니를 돌보다 떠나보낸 30대의 시간 속에서 그는 여성 작가들의 삶과 문장으로 돌아간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조지 엘리엇, 조라 닐 허스턴,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엘레나 페란테가 이 책의 여덟 장을 이룬다. "페미니스트이면서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관습적인 삶의 목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같은 질문은 문학사적 해설보다 훨씬 개인적인 자리에서 시작된다.


책이 좋은 것은 이 여성 작가들을 위대한 이름으로만 모시지 않기 때문이다. 빅스는 그들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실패와 방황을 먼저 통과한 선배이자 친구처럼 읽는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여기서 '자기만의 삶'으로 확장되고, 보부아르와 플라스, 모리슨과 페란테의 문장은 삶이 부서진 뒤에도 자기 서사를 다시 쓸 수 있는지 묻는 실험이 된다. 저자가 말하듯 독서는 지식 축적이 아니라 변화의 경험이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믿음을 따라간다. 문학은 상처를 없애주지 않지만, 상처 이후의 삶을 어떤 문장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가르쳐줄 수 있다. (조애너 빅스 지음ㅣ이미애 옮김ㅣ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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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관찰

정한아의 시에서 사회는 병동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증상을 숨긴 채 돌아다닌다. 2006년 『현대시』로 등단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보호 관찰』은 전작 『울프 노트』 이후 8년여 만에 묶은 57편의 시를 담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639번이다. 책소개가 앞세운 "세상은 대체로 평온하다 어디가/아픈가? 물으면/발광할 것이다"라는 문장은 이 시집의 진단 방식을 잘 보여준다. 표면은 평온하지만 내부는 중체이고, 청진기를 대면 사물과 몸과 사회의 속울음이 증폭된다. '인수공통전염병 냉가슴', '병조림인간', '시장|의 윤리', '트레드밀', '독거실', 여러 편의 '보호 관찰' 같은 제목들은 개인의 우울을 사회적 병증의 어휘로 바꿔 부른다.


시집의 말투는 순하지 않다. "그냥 인력이니까/자원이니까"라고 밀어붙이는 「人力」의 냉소, 벌새인 줄 알았던 것이 박각시나방이었다는 뒤늦은 인식, 응달에서 퍼렇게 질리는 감자, 조문과 장례의 검은 예절 같은 이미지들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원과 상품과 증상으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정한아의 시는 잘 읽히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읽히지 않으려 달아나는 문장들 속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환부가 더 선연해진다. '보호 관찰'이라는 제목은 누군가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제도의 말이지만, 이 시집에서는 아픈 세계를 끝내 눈감지 않으려는 시의 자세가 된다. (정한아 지음ㅣ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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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가속도

AI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을 해부해야 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생성형 AI의 활용법이나 산업 전망 대신, 우주의 탄생과 생명, DNA, 신경계, 신피질, 언어와 문명을 거쳐 지능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확장해왔는지를 따라간다. 책의 부제처럼 질문은 "AI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화하는가"다. 핵심에는 커즈와일의 '패턴인식 마음이론'이 놓인다. 신피질은 세상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규칙을 찾고 작은 패턴을 더 높은 패턴으로 묶어 미래를 예측한다. 인간이 글자를 단어로, 단어를 문장으로, 문장을 의미로 읽어내듯 AI 역시 방대한 데이터에서 관계와 규칙을 학습한다는 설명이 책의 뼈대다.


커즈와일의 낙관은 늘 매혹적이면서 위험하다. '당신 2.0'이라는 사고실험처럼 기억과 감정, 판단의 패턴을 디지털 시스템에 복제한다면 그것을 어디까지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술서의 범위를 넘어선다. 책은 AI를 인간 바깥의 괴물로 그리지 않고, 인간 지능이 스스로를 모방하고 증폭한 다음 단계로 본다. 그래서 강점도 약점도 분명하다. 뇌과학과 컴퓨터과학, 철학과 미래학을 하나의 큰 서사로 묶는 힘은 크지만, 그 서사가 너무 매끄러워 불확실성과 윤리의 진흙탕이 잠시 지워지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AI 이후 인간을 말하려면 결국 다시 마음과 의식, 정체성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밀도 있게 환기한다. (레이 커즈와일 지음ㅣ윤영삼 옮김ㅣ촐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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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사람

AI가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시대에도 발표장 앞에서는 사람이 드러난다. 임은정은 정부지원사업 심사위원석, IR 피칭장, 창업 멘토링 현장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해 보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준비가 부족하면 계획서에서 먼저 티가 났지만, 이제는 AI가 빈 곳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메운다. 서류는 그럴듯한데 왜 이 사업을 하는지, 고객에게 무엇을 확인했는지, 실패하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묻는 순간 빈자리가 드러난다. 저자가 창업 노하우보다 '사람 관찰'에 가까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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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축은 단순하지만 허술하지 않다. 동기, 신뢰, 사람, 실행, 관계, 자원, 협력, 리스크, 도구, 자기다움. 목차의 문장들만 봐도 책의 방향이 선명하다. '빽빽한 종이, 비어 있는 한 줄', '100%를 기다리는 사람, 70%로 나서는 사람',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 '도구를 쓰는 사람, 도구에 쓰이는 사람' 같은 대목은 창업의 기술보다 태도를 겨냥한다. 성공한 창업자의 미담을 쌓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아이템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두 사람이 왜 1년 뒤 전혀 다른 자리에 서는지를 묻는다. 빠른 도구가 많아질수록 더 비싸지는 것은 답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이유를 잃지 않는 사람의 자리다. (임은정 지음ㅣ소금나무)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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