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택공급 대책 삼킨 '용산공원'…공급 총력전이 '공원 전쟁' 된 까닭
8·13 대책 핵심은 수도권 23만호+α
사업기간, 착공까지 68→37개월
대책 일주일 만에 시선은 용산공원으로
정부 "자투리 땅에 청년주택"·吳 "20년 국가 약속" 정면충돌
李·吳 부동산 노선 대리전으로
이재명 정부의 수도권 '23만호+알파(α)' 주택 공급과 공공택지 착공기간 단축을 앞세운 8·13 공급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책을 둘러싼 시선이 서울 용산공원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용산공원 본체부지는 8·13 대책에 공급 물량이 확정돼 들어간 곳도, 당장 착공할 수 있는 땅도 아니다. 그럼에도 용산이 대책 전체를 대표하는 쟁점이 된 것은 이 땅이 서울의 공급 부족과 청년 주거, 도심 녹지,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주도권 문제까지 한꺼번에 건드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8·13 대책의 핵심은 '물량'과 '속도'였다. 정부는 2026~2030년 수도권 135만호 착공 목표의 이행력을 높이면서 신규택지 10만호를 포함해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했다. 후보지 발표에서 착공까지 평균 68개월 걸리던 공공택지 사업도 37개월로 줄이겠다고 했다. 6·27 대출 규제 이후 이어온 수요 억제책에 공급을 본격적으로 얹어 "수요만 누르는 정부"라는 시장의 불만과 우려를 희석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1차관이 용산공원 내 어린이정원을 주택 공급 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정부가 서울시와 협의하겠다고 밝힌 14일 서울 용산 어린이정원 일대 모습. 연합뉴스
집 지을 땅 고갈된 서울…용산공원 급부상
문제는 '어디에 지을 것인가'였다. 서울은 신규 공공택지가 사실상 고갈됐고 그린벨트 해제에는 환경 논란이 따르는 지역이다. 재개발·재건축은 조합 절차와 사업성, 이주 문제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정부가 손쉽게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공유지로 시선이 향했고, 서울 한복판의 300만㎡ 규모 용산공원이 부상했다.
용산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낯선 카드도 아니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용산공원 일부와 주변 반환부지 등에 10만호를 공급하고 이를 청년기본주택으로 활용하는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 핵심지역의 공공 소유 토지를 활용해 청년에게 직주근접 주택을 공급한다는 발상은 현재의 '청년주택' 구상과 정책적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용산공원은 다른 유휴 국유지와 성격이 다르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미군기지 본체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국가적 약속을 법률에 담았다. 120여년간 군사시설로 사용된 서울 한복판의 땅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역사성도 있다. 공급 가능한 '빈 땅'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한번 훼손하면 되돌릴 수 없는 '미래 자산'이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이다.
"전체 검토"서 "비녹지 청년주택"…논란 커지자 정부도 수위 조절
논란이 커지자 정부의 설명도 달라지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4일 "어린이정원이라고 하면 좁은 개념이고 용산공원 전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19일 국회에서는 "용산공원 전체의 녹지를 밀고 주택을 짓는 것은 전혀 아니다"며 장교숙소와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부지 등 이미 녹지 기능을 상실한 곳에 제한적으로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쟁의 축을 옮겨 수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도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은 19일 용산공원을 "금싸라기 땅"이라고 표현하면서 "주택을 만든다고 공원을 안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고 했다. 공원과 주택을 양자택일로 보지 말고 적정 규모의 공원과 청년주택이 공존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취지다.
여기에는 정치적 셈법도 있다. 일반 분양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면 '녹지 훼손'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지만, 공급 대상을 청년·신혼부부 공공주택으로 좁히면 논의의 양상을 바꿀 수 있다. 미래 세대에게 공원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에 '미래 세대가 서울에서 살 집도 남겨야 한다'는 논리로 맞설 수 있어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이탁 1차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용산공원 활용 주택공급 등과 관련한 대화를 하고 있다. 2026.8.19 김현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용산에서 충돌한 李와 吳…사실상 두 공급론의 대결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 시장은 "집값을 못 잡은 책임을 용산공원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했다. 대신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2031년까지 31만호를 착공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공급안을 내세웠다.
이에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란에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급론이 맞서게 됐다. 정부는 국·공유지와 신규택지 등 공공이 통제 가능한 땅을 확보해 공급 속도와 분양·임대 가격을 관리하려고 하는 반면, 서울시는 이미 개발된 도심의 용적률과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민간 공급을 끌어내는 것이 해법이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18일 국무회의에서 이 차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오 시장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요청하자 이 대통령은 공급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공급을 늘리자는 것이지 집값을 폭등시킬 가능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급은 늘려야 하지만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집값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닥치고 공급' 상징되기엔 특별법·오염·여론 산 넘어 산
용산공원이 정부에 마냥 좋은 카드인 것도 아니다. 되레 8·13 대책이 내건 '닥치고 공급'과는 가장 거리가 먼 부지일 수 있다. 현행 특별법 아래에서는 본체부지를 주택용지로 돌리는 데 법적 정비가 필요하고, 장기간 미군기지로 사용된 만큼 토양오염 정화도 선행돼야 한다. 정부가 19일 공론화와 숙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한 만큼 실제 사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법을 고친 뒤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할 경우 서울시의 법정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서울시와 주민의 강한 반발을 뚫고 사업을 강행하는 정치적 비용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용산 논쟁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은 정부에도 부담일 수 있다. 수도권 23만호+α 공급, 3기 신도시 조기 착공, 신규택지 발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정상화 등 실제 시장에서 작동할 대책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예정된 김윤덕 장관과 오 시장의 회동은 정부가 용산을 공급정책의 핵심 카드로 계속 밀어붙일지, 비녹지 지역에 한정한 제한적 개발로 출구를 찾을지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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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관계자는 "정부가 강행하면 공급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20년 국가 약속을 깼다'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고, 물러서면 당장 '서울에 지을 충분한 땅이 결국 없었던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며 "오 시장 역시 반대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공급량을 재건축·재개발로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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