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 듯한 공포감에 '소름 쫙'…17만원 내고 '재난' 속으로 뛰어든 청년들
안전한 통제 속 극단적 공포체험 추구
경복궁 202만명 vs 서대문형무소 1천명
"국내 다크투어리즘은 걸음마 수준" 지적도
죽음이나 재난,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찾아 경험하는 일명 '다크 투어리즘'이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 새로운 체험형 여행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태풍과 홍수 등 극단적인 재난 상황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체험관에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 공포를 마주하는 한편, 실전 생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한 재난 시뮬레이션 센터 '뤼싱 베이스'가 2024년 9월 개장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강풍에 흙탕물 폭우까지… 16만 명 몰린 中 재난 체험관
이곳에서는 1인당 899위안(약 17만 원)을 내면 시속 165km에 달하는 강풍과 폭우, 돌발 홍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야외 생존 기술과 수상 구조 훈련이 포함된 가족 패키지의 가격은 5000위안(약 96만 원)에 달한다. 개장 이후 현재까지 1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다.
참가자들은 방한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전문 교관으로부터 재난 대응 기술을 교육받는다. 현장에는 불안감을 느끼는 방문객을 돕기 위해 안전요원이 상시 배치된다.
해안 도시에서 자랐지만, 태풍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다는 한 참가자는 지하 주차장 침수 시뮬레이션 당시 목까지 흙탕물이 차올랐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감에 '체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며 "갑자기 덮쳐온 토사류에 다리에 멍이 들기도 했지만, 함께 들어간 외국인 관광객들과 서로 도우며 인류애를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은 '탐험가 부부'로 유명한 장신위·량훙 부부가 체르노빌 방사능 구역과 중동 분쟁 지역 등을 탐험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실전 생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각심과 대응력을 키우고자 했다.
이를 접한 현지 누리꾼들은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생존 기술을 가르쳐주는 유용한 공간"이라고 호평하는 한편, "실제 홍수로 터전을 잃은 이들의 고통을 한낱 놀잇거리로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니냐"는 상반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참사 유적지의 교육적 가치… "공동체 기억과 국가 정체성 강화"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재난 체험의 인기 배경으로 '통제된 위험'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을 꼽는다. 치열한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통제된 위기를 극복해 내며 삶의 주도권을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고 분석한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테러 등 인류 역사상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교훈을 얻는 형태로도 이어진다. 뉴욕의 9·11 메모리얼 박물관과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념관이 대표적이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실제 참사 유적지는 상업용 시뮬레이터와 달리 참혹한 역사적 사실과 공동체의 기억에 기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 재난·참사 유적지가 제공하는 진정성은 방문객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인식을 심어주고, 자아존중감과 가족 간의 유대, 국가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교육적 가치가 훨씬 크다"고 설명한다.
한류 열풍에도 외면받는 'K-다크 투어리즘'… 콘텐츠·정책 공백 지적
반면 한국에서는 K팝의 인기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음에도 근현대사의 아픔을 알리는 다크 투어리즘이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인권 탄압의 역사를 간직한 서대문형무소, 국가폭력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 등이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인기 관광지점 1위인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24년 기준 202만 7087명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외국인은 1433명에 불과했다.
관광 당국이나 지자체의 프로그램 지원도 미비하다. 현재 서울관광재단의 안내서에는 장소별 단편적인 소개만 나와 있을 뿐, 역사적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는 다국어 도보 코스 등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중국·일본 관광객 비중이 높은 점도 부담 요인이다. 복잡하게 얽힌 국가 간 역사 갈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중립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한다.
수도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2월 제주연구원의 '제주형 다크 투어리즘 모델 구축' 연구에 따르면, 제주는 전국 최초로 다크 투어리즘 육성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용객 수가 파악되지 않고 자원 목록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정책적 접근이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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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사전 지식이 없는 외국인도 흥미롭게 아픈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입체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일부 유적지가 일시적인 '포토존'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5개년 단위의 통합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해설의 품질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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