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병원은 '가업'일까…상속공제 제외에 '지역의료 붕괴' 논란
비유동자산 많은 지방병원
세금 못 내면 결국 매각·폐업 위기
병원장협 "개정안 재검토를"
수도권 A병원은 40여년간 병원을 일궈온 설립자에 이어 아들이 환자 진료와 경영을 맡아 2대째 운영 중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세법 개정안 발표 이후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까지는 상속이 이뤄질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최대 600억원까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앞으로 병원이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면 수백억 원대의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병원 자산의 대부분이 병원 부지와 건물, 의료장비 등이어서 현금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A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고 가업상속공제를 신청하더라도 심사 과정에서 사업용 자산으로 모두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개정안대로 병원 업종 자체가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면 아예 심사받을 기회조차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병원을 제외하기로 하자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가업상속공제를 단순한 자산 대물림이 아니라 전문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승계하는 기업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취지이지만, 병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전문기술과 조직 운영 경험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대표적인 업종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19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이번 개정안에서 병원을 제외한 배경에는 조세 형평성과 가업상속공제의 남용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 가업상속공제가 상속으로 기업이 매각되거나 해체되는 것을 막고 고용과 사업의 지속성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자산 보유 자체가 주요 수익원인 업종이나 사업용 자산을 사실상 상속세 절감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업종까지 광범위하게 혜택을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병원·약국을 비롯해 마트, 버스·택시 운송업, 주차장업, 창고업 등이 제외 대상에 포함됐다.
문제는 병원을 이런 업종들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병원단체들은 수술 기술이나 진료 프로토콜, 감염관리와 환자안전 체계, 다직종 협업 등을 병원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전문기술과 경영 노하우라고 주장한다. 즉 병원의 경쟁력은 건물이나 토지 같은 유형자산보다 의료진과 조직, 진료체계에 축적된 무형의 자산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병원은 일반 기업과 달리 의료법상 개설 주체가 제한돼 있다. 상속인이 의사면허를 갖고 직접 진료와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병원 승계 자체가 어렵고, 병원의 자유로운 양도·전매도 제한된다. 의료장비와 특수설비 역시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쉽지 않다. 병원을 베이커리 카페나 주차장처럼 단순 자산 이전을 통한 상속세 회피 가능성이 높은 업종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오히려 병원은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정안은 가업 유지기간 10년, 근로자 수와 총급여액 90% 이상 유지, 가업용 자산 40% 이상 처분 제한, 상속인의 가업 종사 의무 등을 담고 있다. 병원의 경우 상속인이 의사로서 직접 진료에 참여하고 의료인력과 조직을 유지하지 않으면 병원 운영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사후관리 조건을 충족하기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병원 하나 사라지면 지역의료도 흔들
병원이 가업상속공제에서 제외되면서 지역의료 단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 개설 병원은 상속 과정에서 최고 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될 수 있지만 지방 중소병원은 토지, 건물, 의료장비 등 비유동자산 비중이 높아 평가액에 비해 실제 현금 창출력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금을 낼 현금을 마련하기 어렵고, 지역에서는 병원을 인수할 수요도 충분하지 않아 결국 매각이나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병원계의 논리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현재 전국 병원급(30병상 이상) 의료기관 약 3300곳 중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의 병원은 1900여곳으로 파악된다"며 "공제 제외 시 전체 병원의 3분의 2 가까이는 승계 트랙 자체가 사라지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응급·중증·분만·소아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대규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 상속재산 평가액은 높지만 실제 현금 창출력은 낮기 때문이다. 병원 한 곳이 문을 닫으면 해당 지역에서 단기간에 대체 의료기관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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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병원장협의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지방 중소병원의 승계가 막히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영역이 함께 위축될 수 있다며 정부에 개정안 재검토를 요구했다. 의료기관의 승계는 단순한 개인 재산의 대물림이 아니라 의료진과 직원, 환자와 지역사회가 형성해온 의료서비스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문제인데, 이번 조치가 지역·필수의료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일부 지역 병원에서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법인 전환 등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지만, 의료법인 전환 역시 별도의 설립·허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만큼 개인 병원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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