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고문헌·과학 분석
영월 장릉 석물 산지는 '제천 송학산'

기록에만 남아 있던 왕릉 석재의 출처가 문헌 고증과 과학 분석으로 재확인됐다.


영월 장릉 전경/국가유산청.

영월 장릉 전경/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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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영월 장릉 석물 제작에 쓰인 석재의 산지를 제천 송학산 일대로 파악했다고 19일 밝혔다.

단서는 단종의 굴곡진 사후사에 있었다. 왕위에서 폐위돼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영월에서 유배 중이던 1457년 생을 마쳤다. 숙종 24년(1698)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비로소 능호가 장릉으로 정해졌다. 무덤은 왕릉의 격에 맞게 새로 정비돼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석물도 함께 조성됐다.


정비 기록은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선조 때 만들어진 문석인과 망주석 각 한 쌍은 장릉 조성 당시 재가공해 다시 썼다. 반면 혼유석과 이를 받치는 고석, 석등인 장명등, 석마·석양·석호 각 한 쌍은 숙종 때 모두 새로 제작했다. 연구원의 비파괴 조사에서 석물들은 모두 흑운모화강암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돌은 어디서 캐온 것일까.

송학산 폐석장 전경/국가유산청.

송학산 폐석장 전경/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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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제약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영월 장릉은 추존왕릉을 제외한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강원도에 있어, 능 인근에서 석재를 구해야 했다. 의궤에는 영월 일대를 먼저 살폈으나 적합한 석재를 찾지 못해 제천 북면 정암까지 이동해 석질을 확인한 뒤 채석지로 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천 북면 정암'이라는 지명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연구원은 옛 지명과 고지도를 대조해 조선말 제천군 북면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 송학면에 편입된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현재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의 정암마을을 유력한 후보지로 지목했다. 실제로 이곳 송학산은 과거 화강암 채석장 여덟 곳이나 있었을 만큼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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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산 일대 채석 흔적/국가유산청.

송학산 일대 채석 흔적/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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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검증은 현장에서 이뤄졌다. 송학산 일대 암석을 분석한 결과 영월 장릉 석물과 같은 흑운모화강암으로 나타났다. 의궤에 적힌 능과 부석소 사이 거리(약 60리, 24㎞)도 실제 거리와 대체로 맞아떨어져, 고문헌 기록과 과학적 분석 결과가 일치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연내 관련 학술지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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