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미경]美·英·日 국책금융, 수도·금융허브에…"이전해도 흩뜨려선 안 돼"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정책금융기관을 수도나 금융중심지에 배치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욕과 런던, 도쿄를 보면 금융기관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경쟁력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며 "인터넷과 전산망이 발달했더라도 국책은행은 행정부와 국회를 자주 오가야 하므로 여러 지역으로 분산하면 업무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서울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정부 부처가 있는 세종이나 금융기관이 모여 있는 부산에 관련 기관을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日 국책금융·예보기구 도쿄 오테마치에 밀집
美 정책은 워싱턴·시장 집행은 뉴욕
英도 핵심 기능 런던에
韓, 지방 이전 선택시 기관 간 집적효과 고려해야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정책금융기관을 수도나 금융중심지에 배치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주요 국책금융기관과 예금보험기구가 도쿄 오테마치에 밀집해 있고, 미국은 정책 금융기관을 워싱턴D.C.에 두면서 금융시장 집행은 뉴욕이 담당한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금융 공기업을 대거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금융의 핵심 기능만큼은 집적 효과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각국 금융기관 공시와 국제결제은행(BIS)·영란은행 등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주요국에서 금융시장과 직접 거래하거나 정부·중앙은행·감독 당국과 긴밀히 협업하는 핵심 기관은 대체로 수도나 주요 금융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日 국책금융·예보기구 모두 오테마치…美 정책·시장 기능 분담
미국에서는 공식 수출신용기관인 미국수출입은행(EXIM)과 국제개발금융공사(DF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모두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다.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워싱턴에 있다.
금융시장 집행 기능은 금융 중심지인 뉴욕이 맡는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면 실제 국채 매매와 공개시장조작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트레이딩 데스크가 수행한다. 정부·의회와의 협업이 중요한 정책기능은 워싱턴D.C., 채권·외환시장과 직접 맞닿은 기능은 뉴욕에 배치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영란은행과 영국수출금융청(UKEF),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예금·투자상품 등을 보상하는 금융서비스보상기구(FSCS)가 모두 런던에 있다. 일본도 국제협력은행(JBIC)과 일본정책투자은행(DBJ), 일본정책금융공고(JFC), 예금보험기구가 도쿄의 대표적인 금융·업무지구인 오테마치에 밀집해 있다.
프랑스의 예금공탁금고(CDC)는 파리, 공공투자은행(Bpifrance)은 파리 대도시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독일재건은행(KfW)은 독일 최대 금융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본점이 있다.
수도나 금융중심지 밖에 국책금융기관을 둔 경우도 있었다. 영국기업은행(BBB)은 셰필드에 있다. 다만 영국기업은행의 약 300명 인력은 셰필드와 런던에 절반씩 배치돼 있다. 인프라·탈탄소 투자를 담당하는 국가부펀드(NWF) 또한 리즈에 본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기업은행의 경우 예금을 받거나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일반적인 은행과는 거리가 있다. 민간 은행과 펀드 등에 보증·출자·재원을 공급하고 이들 협력 기관이 중소기업을 심사해 자금을 집행하는 간접금융 방식이 중심이다. 중심지에 위치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금융도시의 역사는 '집적 효과'의 역사
금융중심지의 형성 과정은 금융산업이 집적 효과를 키워온 역사이기도 하다.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중개회사, 보험사, 로펌·회계법인, 대기업 본사가 한 곳에 모이면 산업과 기업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고 전문인력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BIS는 '국경 간 금융중심지의 막대한 역할' 보고서에서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범위의 경제가 금융 활동을 소수 중심지에 집중시킨다고 분석했다. 시장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자금 수요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전문인력이 모이면 다시 기업과 자본이 유입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전문인력, 로펌·회계법인 등 전문서비스, 지식과 정보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회사가 한 곳에 모이면 필요한 인재와 자문기관을 빠르게 구할 수 있고, 공시자료에 드러나지 않는 시장 정보와 거래 경험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사, 운용사, 중개기관, 기업과 밀집해 있어야 산업과 실물경제 정보 접근성이 좋고 전문성 있는 인재 확보도 유리하다.
집적 효과는 업무가 복잡하고 정보 의존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외환·채권·파생상품 거래와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인수금융, 기업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대형 해외 PF는 기업과 대주단, 수출신용기관, 기관투자가, 로펌·회계법인, 보험사 등이 사업 구조와 위험 분담 조건을 반복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도 채권은행과 법원, 정부·금융당국, 회계법인, 잠재적 인수자 간 신속한 협상이 중요한 만큼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는 생산성을 높인다.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처럼 기업금융·투자금융·해외 PF·구조조정을 직접 수행하는 기관이 금융시장 집적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이유다.
다만 소매금융과 지역 중소기업 금융은 거래기업과 지역산업에 대한 현장 정보가 더 중요하다. 본점이 정책과 위험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 지점이나 현지 금융회사가 상담과 심사를 맡는 방식으로 기능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업무 성격에 따라 지역 이전의 효율성과 금융 중심지 집적의 생산성이 갈리는 것이다.
"서울이 최선…집적효과 반드시 고려해야"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의 입지를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기준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와 기업, 기관투자가, 전문인력이 집중된 서울에 남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관련 기관을 특정 지역에 모아 새로운 집적 효과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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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욕과 런던, 도쿄를 보면 금융기관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경쟁력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며 "인터넷과 전산망이 발달했더라도 국책은행은 행정부와 국회를 자주 오가야 하므로 여러 지역으로 분산하면 업무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서울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정부 부처가 있는 세종이나 금융기관이 모여 있는 부산에 관련 기관을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각 기관을 지역별로 흩어지게 하는 결정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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