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사실 항의했다가 되레 고소당해
"오식별 막으려면 사건 맥락 따져야"

#. 경북 지역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A씨는 동네 미용실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한 중년 남성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가 모친의 사적인 일이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거론하며 모욕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 남성에게 문자 4통을 보냈다. 사과를 요구하며 상대방의 메신저 프로필을 찍어 보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따졌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고소장이었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고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까지 받았다.


#. 서울 노원구에 사는 30대 여성 B씨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남성과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상대방은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임신중절을 강권했다. B씨는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수술을 받았지만 예비 신랑은 그대로 잠적했다. B씨는 그의 집을 한 차례 찾아갔지만 비밀번호가 바뀐 상태였다. 답답한 마음에 5시간 동안 메신저와 전화로 70여차례 연락했다. '야' '너' 등 짧은 단어나 문장을 나눠보낸 게 많았다. 5개월 뒤 상대방은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B씨를 고소했다.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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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나 피해를 계기로 상대방에게 사과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가 스토킹 혐의로 고소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 회복을 위한 연락이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툼에서 유리할 목적으로 기존 가해자가 '스토킹 역고소'를 악용할 여지도 상당하다. 수사기관에서 단순 연락 횟수나 내용뿐 아니라 사건의 전체 맥락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은 2022년 1만545건, 2023년 1만1992건, 2024년 1만3283건, 지난해 1만7351건으로 3년 새 65% 증가했다. 교제폭력 등 범죄가 실제로 증가한 것은 물론 수사기관이 스토킹 행위에 대한 엄벌주의 기조를 펼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임신중절하면 결혼할게" 잠적한 예비 신랑…스토킹 고소장 날아온 사연 원본보기 아이콘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연락 등을 지속하거나 반복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로 규정한다. 피해자를 신속히 보호하고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사과나 피해 회복 요구처럼 연락에 일정한 목적과 사정이 있는 경우는 판단이 어렵다. 해당 연락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그 방식과 정도가 허용 가능한 범위를 넘었는지 등은 수사기관이 개별 사건의 사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스토킹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건인 '정당한 이유'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선행 피해에 대한 사과나 배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선 권리 행사와 스토킹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송지은 법무법인 이채 변호사는 "피해 복구를 위한 정당한 권리 행사와 반복적 괴롭힘을 구별하는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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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갈등이 시작된 경위, 연락의 목적이 상대방의 행동이나 관계를 통제하려는 데 있었는지, 상대방이 두려움으로 회피하는 행동을 보였는지 등을 살펴야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오식별을 줄일 수 있다"며 "법 개정보다는 유사 사건에서 일관적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례 기반의 실무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보완책"이라고 말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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