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영 감독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
구와바라 시세이가 증명한 사진의 힘

1960년 도쿄농업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 청년은 홀로 카메라를 들고 미나마타로 향했다. 친구가 건넨 잡지에 실린 미나마타병 르포를 읽고 취재를 결심했다. 그의 이름은 구와바라 시세이. 훗날 일본 보도사진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불린다.


영화 '사진의 얼굴' 스틸 컷.

영화 '사진의 얼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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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마타에 도착한 구와바라는 곧장 병원을 찾았다. 병실에는 환자 여섯 명 정도가 누워 있었다. 그는 촬영 방식을 고민했다. 사실적으로 찍으면 많은 것이 전달될 테지만,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드럽게 찍어야 했다. 폐를 끼칠 수도 없어서 눈대중으로 노출과 초점을 맞췄다. 두세 장을 찍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더 찍어달라는 사람이 있을 때만 다시 셔터를 눌렀다. 배려와 신중함에 마을 사람들은 "학생 씨"라 부르며 반겼다. 그렇게 마을 공동체 안으로 스며들었다.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사진의 얼굴'은 그로부터 66년의 궤적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구와바라가 미나마타, 서울, 하노이, 평양 등에서 찍은 100만컷 가운데 엄선한 사진으로 굴곡진 발자취를 훑는다.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인 미나마타에서의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마다 방문해 환자와 가족들의 안부를 살핀다. 취재원보다 반세기를 함께한 이웃으로 남겠다는 태도다.


"미나마타병은 아직 계속되고 있는 사건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크나큰 비극이다. 이제 대부분 예순 가까이 됐고, 미나마타병 또한 세상에서 잊혀가고 있다. 그래서 더 찾아오려고 노력한다. 사진은 바래지 않는다고 믿기에."

영화 '사진의 얼굴' 스틸 컷.

영화 '사진의 얼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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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기억은 시간 앞에서 흐려진다. 필름에 새겨진 얼굴은 그렇지 않다. 오래전 찍은 한 장이 지금도 그 순간 그대로 남아, 세상의 무관심을 붙드는 증거가 된다. 이 믿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우에무라 도모코다. 구와바라가 처음 만났을 때 네 살이던 그녀는, 이미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아기부터 수은에 노출돼 있었다. 말하지도, 걷지도 못했다. 당시 찍은 사진은 현재 도쿄도사진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소녀는 사라졌지만, 그 얼굴은 지금도 누군가를 마주한다.


60여 년 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이 사진을 봤다. 그만큼 사회에 미친 파장도 컸다. 1962년 도쿄 유라쿠초 후지포토살롱에서 열린 구와바라의 첫 개인전 '미나마타병 : 공장 폐액과 연안 어민'이 이를 말해준다. 사진계는 물론 대중까지 무명의 청년이 홀로 감지한 사건의 무게를 알아봤다. 일본사진비평가협회 신인상도 이때 따라왔다.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의 원인을 공식 인정한 것은 1968년 9월로, 그가 첫 촬영을 시작한 지 8년 만이었다. 그 사이 행정과 기업은 침묵했고, 구와바라는 매년 미나마타를 찾아 셔터를 눌렀다.


이 시간을 버티게 한 건 특종이나 성과가 아니었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쌓인 정이었다. 실체는 1977년 어느 하루에서 엿볼 수 있다. 구와바라는 우에무라의 성인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그녀의 가족사진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가족 전체를 모아 세 장을 찍었다. 자리를 정리하려던 순간, 우에무라의 어머니가 "벌써 끝내시나요"라며 붙잡았다. 구와바라는 아버지 품에 안긴 우에무라에게 다시 카메라를 향했다. 순간 그녀가 웃었다. 17년을 지켜봤지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해 12월 우에무라는 세상을 떠났다. 해맑은 얼굴은 마지막 사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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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도모코를 안은 아버지 사진. 구와바라 시세이가 촬영했다./도쿄도사진미술관.

우에무라 도모코를 안은 아버지 사진. 구와바라 시세이가 촬영했다./도쿄도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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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태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7년. 한 번의 우연이 아니라 열일곱 번의 되돌아옴이었다. 매년 찾는 발걸음으로 기록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뉴스가 되는 속도와, 그 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구와바라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따라 걸었다.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거창하지 않다. 관심과 배려, 신뢰, 그리고 끈질긴 반복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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