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요청에 "김정은 응답" 주장
2기 첫 실질적인 유인책 평가
이란전 진전 없어 관심 돌리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17일(현지시간) 이를 "전쟁 훈련(war games)"이라고 표현하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같은 날 자신의 대화 요청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응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워싱턴D.C.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분석하며, 이란 전쟁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한미 동맹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에 '당근' 내민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긴급 화상 좌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훈련 축소 결정이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당근'의 성격이 강하다고 짚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김 위원장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트럼프 2기 들어 나온 실질적인 첫 유인책으로 평가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도 북한과 대화를 위한 '전술적' 행동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드니 사일러 CSIS 한국 석좌 프로그램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에도 북·미 대화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전례 없는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미 국방부는 한미훈련 축소 결정에 대한 아시아경제의 질의에 "국방부는 군통수권자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작업하고 있다(The Department of War is actively working on executing the Commander-in-Chief's directive)"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힌 뒤 국방부가 실제 이행 작업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국방부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lchi Freedom Shield·UFS)'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정될지, 한국 측과 관련 협의를 시작했는지 등은 답하지 않았다.

북한은 그간 연합훈련이 '침략 전쟁 연습'이라며 중단을 요구해왔다. 지난 13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17일부터 진행될 예정인 UFS 연습을 지난해보다 격상된 '침략전쟁연습'이라고 비판하며 '대적 입장'이 명백히 표현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 위원장과 자신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양국 훈련이 북한에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고 동조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표로 인해 국방부가 당황했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에 답을 하기 몇 시간 전만 해도 국방부는 "발표할 변경 사항이 없다면서 백악관에 문의해 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 석좌는 실제로 한미 연합훈련이 축소된다면 장기적으로 미국이 감수할 전략적 손실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훈련이 한국 방위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누가 동맹이고 누가 적인지 잊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필립 고든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논리를 받아들여 한미 훈련을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北, 태세 보며 美와의 대화 기회 엿볼 것"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 81돌 경축 국립교예단 종합 교예공연'이 전날 평양교예극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국립교예단 관계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조선중앙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 81돌 경축 국립교예단 종합 교예공연'이 전날 평양교예극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국립교예단 관계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조선중앙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이날 언급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대화 요청에 김 위원장의 답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화하자는 제안에 대해 그동안 김 위원장의 반응이 왜 없었느냐'고 한 기자가 묻자 "그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럼 김 위원장이 응답했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그가 응답했다(Yeah, he has)"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긍정적(very positive)"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잡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핵·미사일 능력을 키웠고 러시아와 군사적 밀착도 강화했다. 빅터 차 석좌는 북한이 시간을 두고 미국과의 대화 기회를 엿볼 것이라며 북·중·러 관계에만 머물기보다는 미국이나 일본과 직접 대화해 외교적 활동 공간을 넓히려 할 가능성은 있다고 관측했다.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난다고 해도 핵 프로그램 동결·축소나 평화협상 같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도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사일러 고문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북한의 핵 능력이 커진 데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돼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입장선 방위공약 의구심 커져"

한국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핵심 자산인 연합훈련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협상 카드로 먼저 내줬다는 점이다. 연합훈련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한미 군의 전시 작전 능력과 연합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다. 지난주 군 당국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이번 훈련에서 드론과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사이버 공격 등 변화하는 위협을 반영해 연합방위태세를 점검할 계획이었다.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정작 한국이 협상에서 소외되는 이른바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김 위원장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일본과 직접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면 한국과의 대화 없이도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북미 대화 재개를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여 석좌는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여왔다"면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날 방법이 생긴다면 이 대통령이 분명히 환영할만한 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6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란전에서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11월3일)를 앞두고 있다. 차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며 "그는 이란 문제에 지쳤고 지루해하며 명확한 해결책이나 쉬운 답이 없기에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이 자신의 북미 대화 요청에 응답했다고 밝히면서도, 응답 시점과 방식 등 구체적인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지시에 대해서도 북한이 반응한 것인지, 과거의 화답을 언급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이란전 역할에 대한 불만이 훈련 축소로 이어졌다는 해석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많은 동맹국에 불만을 품고 있고, 한국이 유일한 건 아니다"라며 "한국에 한마디 쏘아붙인 것은 맞지만, 이번 결정의 큰 동기는 아니었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AD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이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 대통령이 이를 사양했다고 이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나. 이란 문제와 관련해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원한다면 손을 좀 보태달라'고 말했고, 그는 '아니오. 사양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뉴욕(미국)=황윤주 특파원 hy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