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언론, 그래미 새 부문 대표성 문제 제기
그래미 해명에도 부문 재검토론 고개

세계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즈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보이콧'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아시아 음악을 더 많이 조명하겠다며 신설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이 오히려 아시아 음악을 별도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오면서다.

BTS 멤버 7명은 지난 7월 29일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7년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AFP연합뉴스

BTS 멤버 7명은 지난 7월 29일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7년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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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BTS가 2027년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논쟁은 단순한 시상식 카테고리 문제를 넘어 글로벌 음악 산업의 '서구중심주의'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이 가운데, 유럽 주요 언론들도 그래미가 예술을 두고 인종·지역 차별을 한다며 BTS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 사태를 계기로 그래미가 그동안 '비 미국' 출신 가수를 차별해왔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르피가로는 "폄훼이자 인종차별. 그래미, '아시아 팝' 상 신설로 제 발등 찍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래미의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상 도입을 비판했다. 이 기사에서 프랑스 문화부 소속 사회학자 실비 옥토브르는 "(그래미의 행태는) 모두 유럽인이 만들었으니 프랑스 음악이 독일·스페인 음악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꼴"이라며 "음악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말이 안 된다. 폄훼이며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래미가 '아시아용 상'을 따로 만든 "숨겨진 목적은 아시아 소프트 파워에 대한 견제"라고 덧붙였다.

"BTS에 그래미가 필요한가" 달라진 힘의 관계

논란의 시작은 지난 6월16일이었다. 리코딩 아카데미는 2027년 제69회 그래미부터 5개의 신규 부문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는 K팝과 J팝, C팝 등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에서 탄생했거나 널리 인정받는 팝 음악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한 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음악에서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리코딩 아카데미의 설명만 보면 그동안 그래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아시아 음악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지난 7월께 월드컵 결승전에서 BTS가 공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7월께 월드컵 결승전에서 BTS가 공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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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록' 'R&B' '랩'처럼 음악적 특성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활동 지역과 언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아시아 팝' 범주를 만든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의 K팝과 일본의 J팝, 중국권의 C팝 등 서로 다른 산업과 언어, 음악적 특성을 지닌 음악을 '아시아'라는 이유로 한 부문에 넣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판이었다.

그 중심에 BTS가 있었다. BTS 멤버 7명은 7월29일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7년 그래미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BTS가 성명을 통해 '아시안 팝 부문'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미의 신규 부문 발표 직후 지역과 언어에 따른 구분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새 카테고리에 대한 항의로 받아들여졌다. BTS가 그래미 출품 자체를 포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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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선택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그래미와 BTS 사이의 달라진 힘의 관계 때문이다. BTS는 그동안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콜드플레이와의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 등으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래미 무대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시상식의 글로벌 흥행을 견인했다. 이 가운데 BTS의 정규 5집 'ARIRANG'은 올해 빌보드 200에서 2주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강력한 성적을 거뒀다.


이로 인해 이번 결정은 과거처럼 "그래미가 BTS를 인정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BTS가 그래미의 인정 방식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로 관계가 역전됐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예일대 사회학과 역시 그레이스 카오 교수와 관련한 BTS의 그래미 보이콧 논의를 별도로 소개하는 등 이번 사안을 음악상을 넘어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다뤘다. BTS의 선택이 하이브 전체의 보이콧으로 확대된 것은 아니다. 하이브 측은 BTS의 결정이 회사 차원의 공동 방침은 아니며 다른 소속 아티스트들은 개별적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 커지자 한발 물러선 그래미

논란이 커지자 그래미는 당초 정면으로 방어에 나섰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리코딩 아카데미 최고경영자(CEO)는 BTS의 결정을 두고 "안타깝지만 음악 창작자로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안 팝 부문에 대해서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팝 음악의 다양성과 폭발적인 성장을 조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한다고 해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이른바 그래미 '제너럴 필드' 경쟁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며 '아시아 음악을 주요 부문에서 밀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을 반박했다.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유럽 언론들은 BTS의 문제 제기에 상당 부분 공감했다. 영국 가디언은 BTS의 선언을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새 아시안 팝 부문을 향한 상당히 강한 질책으로 평가했다. 가디언은 아시아와 라틴 팝을 새로운 음악 시장처럼 설명한 그래미의 논리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시아와 라틴 음악은 이미 수십 년간 거대한 시장을 형성해 왔고 미국에서도 막대한 청중을 확보한 만큼 이를 별도의 '새로운 장르'처럼 다루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아리랑 월드투어 콘서트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아리랑 월드투어 콘서트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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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엘파이스는 이번 BTS 사태를 그래미를 둘러싼 오랜 대표성 논란의 연장선에서 바라봤다. 엘파이스는 비 영미권 아티스트를 지역과 언어 중심의 부차적인 부문으로 분류할 경우, 북미·영국 가수들이 강세를 보여온 주요 부문과의 거리가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동시에 과거 위켄드와 드레이크, 프랭크 오션 등이 그래미의 투명성과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사례와 J 발빈을 비롯한 라틴 음악계의 반발도 다시 조명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8월 중순이다. 리코딩 아카데미는 BTS의 불참 선언 이후 K팝과 J팝, C팝, 인도 음악 등 아시아 음악계 관계자들과 잇달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메이슨 최고경영자(CEO)도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는 최근 "우리가 포용적인 시상식을 만들려 했던 의도와 달리 일부 아티스트들은 이 부문이 자신들이 만든 음악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리코딩 아카데미는 이와 관련해 이사회와 시상·후보 관련 위원회 등을 통해 해당 부문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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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선 'BTS가 그래미 아시안 팝 부문을 폐지했다'는 식의 표현까지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리코딩 아카데미가 부문 폐지를 공식 발표한 적은 없다. 한편 2027년 그래미 온라인 출품 마감일이 8월21일이라는 점에서 결정까지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후보는 오는 11월16일 공개되고 제69회 그래미 어워즈는 2027년 2월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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