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마땅한 보관 시설 없어
환수는 뉴스 되지만, 보관은 그림자에 가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남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가 지난 13일 공개됐다. 필체와 손도장 대조로 진본 판정까지 마친 희귀 유물이었다. 그런데 취재진의 관심은 진위보다 다른 데 있었다. "이걸 어디에 둘 것인가."
환수를 주도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설립된 지 14년이 됐지만 마땅한 보관 시설이 없다. 여전히 국립고궁박물관에 임시로 맡기는 구조다. 박정혜 이사장은 "예산이나 조직을 키우는 게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상태가 계속되느냐는 질문엔 "당분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환수는 성과로 남았지만, 관리는 여전히 물음표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해외에 흩어진 문화유산 24만7000여 점 가운데 5% 정도를 환수했다. 나머지 95%를 찾아와야 할 기관이 정작 되찾은 것을 보관할 자리는 없다. 국가유산청 예산은 올해 1조497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9% 늘었다. 정부 총예산 증가율 8.1%엔 못 미친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0.2057%)도 줄었다. 26조2000억원 규모였던 1차 추경에서도 국가유산청 몫은 14억원에 그쳤다. 예산 자체가 빠듯하다 보니, 유물을 지킬 여력까지는 생기지 않는 모양새다.
부실한 관리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유묵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가 대표적 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뤼순 감옥에서 쓴 글로,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는 뜻을 지녔다. 홍익대를 설립한 이도영 씨가 소장하다가 1972년 보물로 지정됐고, 4년 뒤 청와대에 기증됐다. 그런데 1980년 전후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지금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조차 파악되지 못했다.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국가유산 도난 미회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가유산 도난 신고를 한 지 10년 이상 지났으나 회수되지 않은 사례는 553건에 달한다. 여기서 스무 건은 국가지정유산이다. 국보 한 건, 보물 열 건, 국가민속문화유산 다섯 건, 천연기념물 두 건, 국가등록문화유산 한 건, 사적 한 건 등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중근 의사 유묵은 약 예순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는 1966년 일본인 니시가와가 기증했고,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임적선진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는 1996년 신용극 유로통상 회장이 사들여 해군에 건넸다.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은 뤼순 감옥 근무자의 조카 오리타 간지가 1989년 넘겨줬다. 지난 2월에는 일본 도쿄도립 로카기념관 소장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가 6개월 기한으로 국내에 들어와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전시됐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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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형태도, 관리 주체도, 점검 기준도 제각각이지만, 겪는 과정은 비슷하다. 처음 공개될 때는 크게 조명받지만, 그 뒤엔 관심이 빠르게 식는다. 더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방안을 논의할 동력도 그만큼 약해진다. 환수는 뉴스가 되지만, 보관은 그림자에 가려진다. 다음 유묵이 돌아올 때도, 질문은 유효할 것이다. "이걸 어디에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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