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관 지방이전]②'나눠먹기식' 지역 안배에 국가 금융경쟁력 흔들
금융위·금감원 세종행, 국책은행 지역별 분산 거론
인력·정보·자본 서울 집중…산은·수은 '입지'도 경쟁력
국민연금 이전 후 해외 대체투자 성과 저하 연구도
"기관별 기능·특수성 따져 이전 여부 판단해야"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 발표가 임박하면서 금융당국과 금융 공공기관의 이전 여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관별 기능과 금융산업 특성을 따지지 않은 채 '지역 안배'를 앞세워 이전을 추진할 경우 균형발전의 편익보다 국가 금융경쟁력 약화라는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기업금융과 투자, 구조조정 등 시장과의 접점이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국책은행은 이전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금감원 세종행 유력…국책은행 '쪼개기 이전' 거론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금융당국의 세종 이전을 포함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세종행 가능성이 큰 가운데 금융감독원 역시 이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산하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와 재정경제부 산하 수출입은행 등도 이전 대상으로 거론된다. 국책은행인 산은·수은·기은의 경우 한 지역에 몰아넣기보다는 세종·나주·부산 등으로 분산 배치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회사가 밀집한 서울을 떠날 경우 정책·감독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금융회사와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물리적 거리가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 검사 부서는 금융사고 발생 시 신속한 검사와 유관기관 협업이 중요한 만큼 일부 기능은 서울 배치가 타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현실적으로 이전을 막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고 전 기관이 논의 대상에 오르는 만큼 이를 거부할 논리와 명분이 약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재·정보·자금 모이는 서울…국책은행은 '입지'가 자산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만큼은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문 인력과 정보, 네트워크가 핵심 자산인 금융업에서 금융회사와 기업, 투자자가 밀집한 서울이라는 입지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것이다.
국책은행 사이에서도 업무 특성에 따라 이전 문제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국 영업망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금융을 취급하는 기은과 달리 산은과 수은은 기업금융과 투자·프로젝트 금융 등 전문 업무가 본점에 집중돼 있어 시장 접근성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주장이다.
산은은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금융을 비롯해 2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첨단전략산업과 벤처 부문에 투자하고 자금을 공급한다. 특히 투자와 구조조정은 기업과 금융회사, 기관투자자, 로펌, 회계법인 등과 긴밀한 정보 교류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업무다. 수은 역시 국내 수출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뿐 아니라 해외 인프라·플랜트·방산 등 대형 프로젝트 금융을 담당한다. 이들 업무는 시장과의 접점이 중요한 만큼 정보 접근성과 국내외 금융 네트워크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투자금융과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지방으로 일괄 이전할 경우 숙련된 심사역과 구조조정 전문가 이탈, 거래정보 취득 지연, 공동 투자자 발굴의 어려움과 위기 대응 속도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지털 환경이 발달한 만큼 금융 공공기관이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성은 줄었다"면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지역 인재 채용과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보여준 이전 비용…우수 인력 이탈은 '진행형'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은 금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인력 이탈 문제를 보여주는 선례로 꼽힌다.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전주로 이전했고,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전주로 옮겼다. 이후 기금운용본부에서 인력 이탈이 이어져 매년 수십 명의 퇴직자가 나오고 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퇴직자는 160명에 달했다.
민간 금융회사보다 낮은 보상 수준에 지방 근무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국민연금에서 투자 경험을 쌓은 숙련 인력이 높은 보상과 서울 근무 여건을 갖춘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으로 옮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우수 인력 이탈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지방 이전이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도 있다. 202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지방 이전이 기금운용성과에 미친 영향 분석'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의 지방 이전은 해외 대체투자의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을 9.5%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외 주식·채권과 달리 해외 대체투자는 비공개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가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금융 중심지와의 물리적 거리에 따른 정보·인적 네트워크 약화가 운용 성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최근 미국과 한국 주가 상승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지만 비교 가능한 경쟁 기관이 없어 성과를 평가하기 쉽지 않다"며 "숙련된 운용 인력 이탈을 최소화했다면 더 높은 성과를 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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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원 법무법인 린 금융법제연구센터장은 "민간 기업이 아닌 금융 공공기관 이전만으로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금융기관은 시장과의 접근성과 우수 인력 확보가 경쟁력인 만큼 일률적인 이전보다 기관별 기능과 업무 특성을 우선 고려해 이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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