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피리딘 질소 위치 바꾸는 합성법 개발…실제 항암제·소염진통제에도 적용
치환기 하나씩 옮기는 대신 질소 이동 '역발상'…최대 수율 88%·네이처 게재
복잡한 약물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특정 원자의 위치만 바꿔 새로운 약물 후보 물질을 만들어내는 '분자 편집' 기술이 개발됐다. 신약을 처음부터 다시 합성하지 않고 기존 약물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변형해 약효와 물성을 비교할 수 있어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범위를 넓힐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은 홍승우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단장직무대행(KAIST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피리딘 구조 안에서 질소 원자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꾸는 '질소 원자 전위(N-atom transposition)' 합성법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날 게재됐다.
피리딘의 질소 위치 재배치를 통한 위치 이성질화. 피리딘은 의약품에 널리 쓰이는 고리 구조로, 질소와 치환기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약효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치환기를 직접 옮겨 위치 이성질체를 만들었지만, 연구진은 치환기는 그대로 두고 질소 원자의 위치를 바꾸는 방식을 개발했다. 새로운 질소를 원하는 위치에 삽입하고 기존 질소를 질소 기체(N₂)로 제거해, 복잡한 약물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질소 위치만 다른 새로운 이성질체를 만들 수 있다. 연구진 제공
피리딘은 탄소 원자 5개와 질소 원자 1개가 육각형 고리를 이루는 화합물이다. 의약품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물질의 기본 골격으로 널리 사용된다. 같은 종류의 원자와 치환기로 구성돼 있더라도 질소와 치환기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지면 용해도와 흡수·투과성, 결합 특성뿐 아니라 약효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 과정에서는 질소와 치환기의 위치 관계가 조금씩 다른 '위치 이성질체'를 만들어 각각의 성질을 비교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문제는 기존 합성법으로는 원하는 위치 이성질체마다 별도의 출발 물질과 합성 경로를 설계해 처음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완성된 분자의 치환기를 직접 옮기는 방법도 있지만 치환기의 종류마다 필요한 반응 조건이 달라 여러 치환기가 붙어 있는 복잡한 약물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치환기는 그대로 두고 '기준점' 질소를 옮겼다
연구진은 치환기를 하나씩 이동시키는 대신 이들의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점인 질소 자체를 옮기는 방식을 택했다. 치환기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질소의 위치를 변경하면 질소를 기준으로 한 여러 치환기의 상대적인 위치가 한꺼번에 달라지는 원리다.
연구진은 외부 질소 공급원에서 새로운 질소를 피리딘 고리에 집어넣은 뒤 기존 질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6개의 원자로 이뤄진 고리가 일시적으로 7원자 고리로 확장된 뒤 다시 재배열되면서 질소의 위치가 바뀐 새로운 피리딘이 만들어진다.
동위원소 추적 실험에서는 외부에서 새로 넣은 질소가 피리딘 고리에 남고 원래 존재하던 질소는 질소 기체(N₂) 형태로 빠져나가는 것도 확인했다. 기존 분자의 주변 구조를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 핵심 골격 안의 원자 하나를 교체하고 위치까지 바꾼 셈이다.
연구팀은 치환기가 하나만 붙은 단순한 피리딘부터 두 개 이상의 치환기가 붙은 복잡한 구조까지 이 기술을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반응 조건을 최적화한 실험에서는 위치 이성질체 합성 수율이 최대 88%에 달했다. 반응물 규모를 10밀리몰(mmol)까지 늘린 실험에서도 74%의 수율을 유지했다.
연구진 사진. 왼쪽부터 홍승우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단장(교신저자), 최원준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박사후연구원(제1저자), 박지용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위원(공동 제2저자), 주혜원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학생연구원(공동 제2저자). IBS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특히 이미 시판 중인 항암제 비스모데깁과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 소염진통제 에토리콕시브에도 기술을 적용했다. 복잡하게 완성된 기존 약물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피리딘의 질소 위치만 달리한 새로운 분자들을 합성했다. 이미 개발된 의약품이나 신약 후보 물질을 토대로 구조가 조금씩 다른 후보군을 빠르게 만들어 약효와 물성을 비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용매를 바꾸는 것만으로 생성되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계산화학 분석 결과 용매에 따라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 장벽이 달라졌으며, 이를 이용하면 원하는 위치의 이성질체가 더 많이 만들어지도록 반응을 유도할 수 있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너무 싸졌다"…40% 빠진 삼성전자·SK하이닉스, ...
홍 단장직무대행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골격 안의 원자 위치 자체를 바꿔보자는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 연구"라며 "완성된 분자의 핵심 골격을 원자 수준에서 직접 편집해 물성과 약효 변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신약 후보 물질의 발굴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