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희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팀장 인터뷰

"혹시 집에 냄새나는 수건 있으면 버리지 말고 가져다주세요."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 close 증권정보 051900 KOSPI 현재가 302,000 전일대비 2,000 등락률 +0.67% 거래량 16,862 전일가 300,000 2026.08.19 10:23 기준 관련기사 성장지도 바뀐 K뷰티…탈중국 후 美·유럽 전선 확대 뷰티는 '탈중국'·패션은 '재도전'…대륙 바라보는 엇갈린 전략 [클릭 e종목]"LG생건, 실적 예측가능성 높아져…'매수' 의견" Fabric Care 연구팀에서는 한동안 '냄새나는 빨래'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빨래 쉰내를 잡는 세제를 개발하려면 역설적으로 지독한 냄새가 밴 섬유부터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각자 집에서 사용하던 수건과 베갯잇, 청바지를 챙겨왔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쉰내 나는 빨래가 있으면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냄새가 심할수록 좋은 연구 샘플이었다.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빼고 있다. 게티이미지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빼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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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연구원은 직접 '냄새나는 운동복 만들기'에 나섰다. 러닝 후 운동복을 빨지 않은 채 지퍼백에 보관했다가 다음 날 다시 입는 과정을 일주일간 반복했다. 제품 개발 소식을 들은 유관부서 직원이 "허리벨트 우레탄 부분에 밴 냄새가 아무리 빨아도 빠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물건을 시험용으로 내놓기도 했다. 제품의 냄새 제거력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냄새나는 빨래를 찾아다니며 일종의 '악취 샘플 구걸'까지 한 셈이다.


샘플 확보만큼 어려웠던 것은 '냄새가 정말 사라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었다. 얼룩은 세탁 전후를 눈으로 비교할 수 있지만 냄새는 달랐다. 냄새 물질의 양과 미생물의 구성, 세탁·건조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데다 사람마다 후각 민감도도 제각각인 탓이다. 세탁 직후에는 괜찮지만, 옷이 젖거나 다시 입었을 때 냄새가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실제 사용 환경을 반복해서 재현하고 냄새 평가 방법을 새롭게 구축해야 했다.

원정희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 팀장.

원정희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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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희 LG생활건강 Fabric Care 연구팀 팀장은 "얼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냄새는 세탁 조건이나 건조 조건,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모두 달라 제품 성능을 판단하기가 훨씬 까다로웠다"며 "실제 생활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다루는 제품인 만큼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연구실에서는 더 고약한 일도 벌어졌다. 모락셀라균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냄새 물질인 '4M3H'를 직접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0.1ppm, 천만분의 1 수준의 극소량으로도 특유의 빨래 쉰내를 강하게 풍긴다. 실험 과정에서 조금만 잘못 다뤄도 연구실 전체에 냄새가 퍼졌다. 심할 때는 같은 층 연구원들이 자리를 피했고, 옷에 냄새가 밴 채 퇴근하면 지하철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비켜가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냄새나는 빨래를 찾아 헤맨 끝에 탄생한 제품이 LG생활건강의 '피지 모락셀라'다. 원 팀장은 "냄새를 없애는 제품을 개발하는데 정작 연구할 때는 냄새나는 수건을 찾아다니게 됐다"며 "어느 순간부터 연구실에서는 냄새나는 수건이 오히려 귀한 시험편, 거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됐다"고 웃었다.


제품 개발의 출발점은 '고객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1~2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였다. 이들은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쓰기보다 효율성을 중시했다. 과거처럼 빨래를 삶거나 냄새 제거를 위해 별도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기도 꺼렸다. 소비자 조사에서 이들이 가장 큰 세탁 고민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빨래 쉰내'였다.


원 팀장은 "기존에는 세제를 바라볼 때 세척력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고객이 왜 같은 불편을 반복해서 겪는지를 보는 데서 시작했다"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시간을 더 쓰는 것이 아니라 평소 세탁 과정 안에서 추가적인 수고 없이 해결하고 싶다는 니즈가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왜 빨았는데도 냄새가 날까'라는 질문을 파고들었다. 문헌을 통해 빨래 냄새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미생물로 모락셀라가 알려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실제 가정의 빨래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했다. 연구원들이 집에서 사용하던 수건을 가져와 균총을 분석한 결과 모든 수건에서 모락셀라가 발견됐다. 일부 수건에서는 전체 미생물 가운데 모락셀라 비중이 99% 이상을 차지했다.


LG생활건강의 피지 모락셀라 냄새제거 세탁세제.

LG생활건강의 피지 모락셀라 냄새제거 세탁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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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셀라는 섬유에 남은 피지 등 오염물질을 먹고 냄새 물질인 '4M3H(4-Methyl-3-hexenoic acid)'를 만들어낸다. 세탁 후에도 섬유에 피지나 모락셀라가 충분히 제거되지 않으면 다시 냄새가 발생할 수 있다. 여름철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모락셀라와 오염물질이 남아 있는 한 계절과 관계없이 냄새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피지 모락셀라가 일반 세제와 갈리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기존 세제가 얼룩과 오염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제품은 향으로 냄새를 덮는 대신 냄새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까지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LG생활건강이 60년 이상 축적한 세탁세제 기술을 기반으로 효소, 피톤치드, 소취 특화 성분 등 15종의 탈취 포뮬러를 적용했다. 강한 세척력으로 모락셀라균의 먹이가 되는 피지 등 오염물질과 균을 씻어내고, 모락셀라가 만들어낸 4M3H까지 제거해 반복되는 빨래 쉰내를 예방하는 방식이다.


제품명에 소비자에게 생소한 미생물 이름인 '모락셀라'를 그대로 넣은 것도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개발 초기에는 다른 이름도 여럿 검토했다. 원 팀장은 "낯선 이름이라 고민이 많아 소비자들에게도 여러 차례 물어봤다"며 "냄새의 원인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우리가 만든 제품을 과학적이고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 결국 모락셀라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말했다.


고객 조사와 실험 등 약 1년6개월의 개발을 거쳐 2024년 7월 첫 제품인 코튼 부스터가 출시됐다. 일반 액체세제가 아닌 세탁할 때 한 알씩 넣는 부스터 형태를 먼저 내놓은 것도 가사 효율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선택이었다. 이후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며 액체세제와 스포츠 세제, 탈취제, 섬유유연제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시장 반응은 연구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액체세제는 지난 7월 쿠팡 세탁세제 판매 1위에 올랐고, 올해 1~7월 피지 모락셀라 세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6% 증가했다. 원 팀장은 "제품력에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냄새 고민에 공감한 소비자들이 직접 사용한 뒤 입소문을 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숫자보다 더 기억하는 것은 소비자의 반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비결은 피지 모락셀라"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조회수 30만회를 기록했고, "LG생활건강 쪽으로 하루에 한 번씩 감사기도를 하겠다", "사랑한다. 너 없으면 안 된다"는 후기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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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팀장은 "저희 집 수건에서도 냄새가 났는데 이 제품을 사용한 뒤에는 다른 제품을 못 쓴다"며 "처음에는 냄새나는 수건을 찾아다니고 냄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고객들이 실제 생활에서 효과를 체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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