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로시 前 회장, 향년 93세 별세
보수적인 도요타 개혁한 인물
기업 넘어 일본 재계 혁신에도 앞장서
사회현상에도 거침없는 '쓴 소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요타 타도'라는 발상으로 개혁에 나서주길 바란다. 최대의 적은 내면의 자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차를 파는 회사, 일본 도요타자동차죠. 매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곤 합니다. 수많은 도요타의 경영자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발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바로 오쿠다 히로시 전 회장이죠. 도요타의 세계화를 이끌고 세계 최초로 양산형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출시를 주도한 사람입니다. 지난 8일 이 오쿠다 전 회장이 향년 9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일본 정·재계에서도 연일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쿠다 전 회장은 1932년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955년 히토쓰바시대를 졸업한 뒤 도요타에 입사했는데요. 원래는 경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고, 1995년에는 사장에 오르게 되는데요. 도요타 창업주 일가 출신이 아닌 외부 인물로는 28년 만에 오른 자리였습니다.

1997년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쿠다 히로시 당시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도요타의 개량형 스포츠 세단 '아리스토'의 운전석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일본)=AP연합뉴스.

1997년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쿠다 히로시 당시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도요타의 개량형 스포츠 세단 '아리스토'의 운전석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일본)=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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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쿠다 전 사장이 취임했을 당시 도요타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 내 점유율이 4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위기감이 감돌던 시기였죠. 심지어 도요타는 워낙 보수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유명했는데요. 오죽하면 "도요타는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는다"라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오쿠다 전 사장은 취임 당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다. 과감하게 도전한 것을 좋게 평가하겠다"라고 선언했는데요.


먼저 국내 판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기획력을 대폭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프리우스 출시를 서두르는데요. 직접 현장에 나가 초단기간에 양산할 것을 독려하면서, 출시 시기를 대폭 앞당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1997년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21세기에 맞춰 나왔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붙일 수 있게 됐죠. 이것을 시작으로 이후 하이브리드는 도요타를 대표하는 기술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해외 사업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원래 도요타는 일본에서 만든 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 유럽, 인도, 중국 등 해외 각지로 생산거점을 확대해 '현지 생산 현지 판매'의 체계를 구축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이런 전략이 성공하면서 오쿠다 전 회장의 재임 기간 매출이 2배로 늘었다고 하는데요. 도요타의 성공 기반을 본격적으로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기도 합니다.


회사가 잘 나간다고 해서 안주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항상 강조한 것이 '자동차 업계 1위'가 된 도요타 내부의 자만이었는데요. 1999년 마침내 회장에 오른 그는 그 뒤 2001년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에게 '도요타 타도'를 주문합니다. 경쟁사를 이기는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회사 경영을 넘어 일본의 정·재계 체질 개선에도 과감히 나섰는데요. 그는 우리나라에서 '게이단렌'으로 불리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규제 개혁에도 많은 목소리를 냈죠.


일본 사회를 향해서도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놓은 인물이기도 한데요. 2002년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는 일본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책임감이 부족해진 원인에 대해 "전후 교육의 문제"라며 "일본은 언제부턴가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기업에 들어가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패나 좌절 등의 경험 없는 CEO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의미가 통하는 부분이죠.


1998년 7월 1일 오쿠다 히로시 당시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일본)=로이터연합뉴스.

1998년 7월 1일 오쿠다 히로시 당시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다. 도쿄(일본)=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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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뒤 일본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게이단렌의 쓰쓰이 요시노부 회장은 오쿠다 전 회장이 "민간 주도·자율형 경제사회의 구축을 목표로 일본의 구조개혁을 주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쿠다 전 회장에게 게이단렌 회장직을 이어받았던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도 그를 자신의 '경영의 스승'이라며 "대국적인 관점에서 경영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배웠다"고 추모했죠.


지역에서도 애도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도요타 공장이 위치한 지자체들에서 많은 목소리가 나왔죠. 도요타시가 속한 아이치현에서는 오무라 히데아키 지사가 "도요타를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끌어 올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했고, 고향인 미에현 등에서도 잇따라 추모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오쿠다 전 회장이 마지막까지도 도요타를 걱정했다는 점입니다. 닛케이에 따르면 그는 별세하기 불과 몇주 전 도요타의 한 전직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도요타는 최신 기술을 더 어필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물어봤다고 하는데요. 90대가 된 뒤에도 도요타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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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잘 나갈수록 지금의 성공 방식을 지키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쿠다 전 회장은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다"며 끊임없이 변화를 주문했죠. 그의 별세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그의 30년 전 메시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도쿄(일본)=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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