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해협 폐쇄가 세계 경제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지만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교역을 좌우하는 약 30개의 주요 해상 병목 지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각 병목 지점은 저마다의 위험과 잠재적인 충돌 지점을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13일(현지시간) ‘좁은 해협, 커지는 위험 - 해운 병목 지점 평가(Strait and narrow - assessing shipping chokepoints)’라는 제목의 리서치 브리핑에서 각 병목 지점의 우회 가능성, 항구 접근성 등을 분석했다. 또 병목 지점이 단순한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점점 더 활용되고 있는 데다가 엘리뇨로 인한 운하 수위 저하, 태풍으로 인한 항만 피해 등 기후와 자연재해 역시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더 복잡하고 변동성이 커진 세계에서 기업들은 공급망 집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급업체를 다변화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공급망 집중 위험과 함께 운송 위험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의 통항량은 여전히 분쟁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잠정 합의 아래 나타났던 부분적인 회복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휴전이 종료되면서 해협의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추가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둘러싼 평가는 ‘당장 가능하다’는 전망부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까지 크게 엇갈린다. 어느 쪽이든 지난 6월 체결된 양해각서(MOU)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점과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해상 통로가 다시 열리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이 예상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올해 남은 기간의 진전이 ‘한 걸음 전진한 뒤, 두 걸음 후퇴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세계 해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들은 당연히 호르무즈해협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평상시에는 전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매일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이 항로가 폐쇄되면서 세계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다.


우리는 이번 분쟁이 세계 경제에 초래하는 경제적 피해를 폭넓게 분석해왔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률을 약 1%포인트 끌어올리면서 올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분쟁이 없었을 경우보다 약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해운의 수많은 병목 지점(chokepoint)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각 통로는 취약성이 서로 다르고 세계 교역과 역내 교역, 개별 경제권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제각각이다. 이번 리서치 브리핑은 이러한 병목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요인으로 폐쇄될 수 있는지, 어느 경제권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살펴본다.


교역이 집중되는 곳

세계 교역에 중요한 주요 병목 지점은 약 30곳에 이른다. 일부는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처럼 누구나 아는 곳이다. 이 두 운하는 바다와 바다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대표적인 지름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리적 조건이 우연히 만들어낸 결과다. 호르무즈해협과 지브롤터해협, 보스포루스해협처럼 육지 사이에 좁게 끼어 형성된 해협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병목 지점은 세계 각지에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 가장 밀집한 곳은 아시아다. 군도가 많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말라카해협과 순다해협, 롬복해협은 인도네시아의 섬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대만해협과 루손해협, 보하이해협은 동아시아 해안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교역은 지브롤터해협과 보스포루스해협, 발트해 입구의 덴마크 해협들을 통과해야 한다. 미주로 향하는 교역은 파나마운하로 집중된다.

“호르무즈 같은 약 30개 해운 병목지점, 위험 평가”-옥스포드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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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로들을 오가는 교역량은 막대하다. 세계 교역의 거의 4분의 1이 말라카해협과 대만해협을 통과한다. 지브롤터해협과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물량도 전 세계 교역의 거의 5분의 1에 달한다. 베이징과 톈진의 바다 쪽 관문인 보하이해협을 통과하는 교역량은 세계 전체의 5%를 넘으며, 보스포루스해협도 이와 비슷한 규모다.


선박 한 척이 한 번의 항해에서 여러 병목 지점을 연속으로 통과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위험은 중첩되곤 한다.


예를 들어 상하이에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컨테이너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만해협, 남중국해, 말라카해협, 바브엘만데브해협, 수에즈운하, 지브롤터해협을 차례로 통과한다. 화물 한 건이 잠재적인 차질 지점 6곳을 거치는 셈이다.


실제로 이 가운데 한 곳에서는 현재 차질이 현실화돼 있다. 홍해가 대부분의 해운사에 지나치게 위험한 해역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같은 컨테이너는 대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항해해야 하며, 운항 거리는 수천㎞ 더 늘어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본다.


이러한 병목 지점에 차질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 병목 지점의 위험도는 단순히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선박과 화물이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대체 항로가 존재하는지도 중요하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각 병목 지점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짧은 우회로를 이용할 수 있는 곳,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우회가 필요한 곳, 그리고 대체 항로가 전혀 없는 곳이다.


대체 항로가 전혀 없는 병목 지점은 많지 않지만 그 영향은 매우 크다. 호르무즈해협과 흑해의 보스포루스해협·케르치해협, 보하이해협, 발트해 입구의 외레순해협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통로가 폐쇄되면 그 뒤편 지역의 교역은 중단된다.


우회가 가능하더라도 비용이 적게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멜버른에서 앤트워프로 운송되는 화물은 일반적으로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뒤 더 큰 선박으로 환적하고, 말라카해협과 바브엘만데브해협, 수에즈운하, 지브롤터해협을 차례로 통과해 유럽으로 향한다.


수에즈운하가 폐쇄될 경우 그다음으로 나은 대안은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는 것이다. 이 경우 운송 거리는 약 5000㎞ 늘어나고 운송기간도 2~3주 추가된다.


2023~2024년 홍해 위기와 최근 몇 달간의 상황 전개는 이러한 문제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2023년 말부터 후티의 공격으로 해당 항로가 대부분의 해운사에 지나치게 위험해지자,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선박의 기본 항로는 희망봉 우회로로 바뀌었다.


이로 인한 운송시간 증가는 해운사에 상당한 부담을 줬다. 선박이 바다에서 일주일을 더 보내면 그만큼 다른 항로에 투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회 운항은 사실상 이용 가능한 전 세계 해운 공급능력의 상당 부분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낸다.


여기에 연료 소비 증가와 전쟁위험 보험료 상승까지 겹치면서 운항 차질이 시작됐을 당시 컨테이너 운임은 3배 넘게 급등했다. 영향은 아시아·유럽 항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선박 공급이 제약되면 모든 항로의 운임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세계 해운 운임이 2025년을 거치며 정상화되기까지는 선박 공급을 대폭 늘리기 위한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병목 지점의 운항 차질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을 살펴보기에 앞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병목 지점인 말라카해협과 대만해협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두 해협 모두 인근에 대체 항로가 있어 겉으로는 운항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말라카해협은 싱가포르와 탄중펠레파스항, 포트클랑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이들 항만은 전 세계 환적 물동량의 약 4분의 1을 처리한다. 이 항만들은 해운업의 ‘허브 앤드 스포크(hub-and-spoke, 대형선이 원양 항로 거점(Hub)을 맡고 중소형 피더선이 지선망(Spoke)을 연결하는 방식)’ 네트워크에서 핵심 허브 역할을 한다.


말라카해협이 폐쇄되더라도 화물은 순다해협이나 롬복해협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화물을 한데 모아 다시 각지로 분배하는 핵심 허브 항만에는 접근할 수 없게 된다. 해운사들은 비효율적인 직항 운송을 택하거나, 물동량을 받아낼 충분한 처리 능력이 없는 2차 허브를 이용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한다. 따라서 대체 항로가 존재하더라도 어느 것도 위험을 실질적으로 완화해주지는 못한다.


대만의 경우에는 두 가지 문제가 핵심이다.


첫째, 대만해협의 운항 차질은 단독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더 광범위한 역내 혼란이 이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대체 항로 역시 대만해협 자체보다 안전할 가능성이 낮다.


둘째, 대만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거의 전부가 해상을 통해 들어온다. 따라서 선박이 대만 항만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는 운항 차질이 발생하면 대만 경제가 멈출 수 있다. 동시에 세계 AI 투자 사이클의 핵심인 첨단 반도체 생산도 중단될 수 있다.


다음 운항 차질은 무엇이 촉발할 수 있나

무역 차질을 촉발할 가능성이 큰 요인으로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지정학이다. 지정학적 위험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병목 지점은 점점 단순한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통제하거나 통행료를 부과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지렛대’이자 전략적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파나마운하: 미국과 중국은 파나마운하 운영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지난 1월 법원 판결로 홍콩계 운영사가 운하 양쪽 끝에 있는 항만 터미널 운영권을 잃었다. 운하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려 했던 미국에는 승리로 평가됐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중국 항만에 정박한 파나마 선적 선박들을 억류하고 운하 터미널을 이용하던 서비스를 철수했다.


-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은 이 지역 해운에 가장 뚜렷한 위험요인이다. 중요한 점은 우회 항로 역시 분쟁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대만해협을 피하는 선박들은 루손해협과 남중국해를 지나야 한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7월 단 일주일 사이 중국과 필리핀 세력이 세 차례 충돌했다. 또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3분의 1이 중국이 거의 전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을 통과한다.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할 경우 대체 항로 역시 대만해협 자체보다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 호르무즈해협과 홍해: 단기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충돌 지점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곳들이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으며,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후티의 작전 역량도 여전히 건재하다. 두 항로의 통항량은 당분간 낮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며, 합의가 체결된 이후에도 두 통로 모두 빠르게 다시 폐쇄될 수 있다.


- 흑해: 보스포루스해협과 케르치해협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의 제약 속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항구와 선박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고 있다. 이 두 해협은 우리가 분류한 ‘대체 항로가 없는’ 유형에 속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비료, 에너지의 수출품은 바다로 나갈 다른 길이 없다.


- 새로운 무대: 빙하가 녹으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해 거리를 수천㎞ 줄일 수 있는 북극 항로가 열리고 있다. 각국은 이 핵심 항로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 마지막 지정학적 위험은 병목 지점의 운항 차질을 촉발할 수 있는 두 번째 잠재 요인인 자연재해와 기후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장 명확한 사례는 파나마운하다. 기상 예측기관들은 엘니뇨가 강해지면서 2026년 말까지 ‘매우 강한(very strong)’ 수준에 도달할 확률을 81%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운하 갑문에 담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인 가툰호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파나마운하 당국은 이미 올해 들어 선박의 최대 허용 흘수(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의 깊이)를 다섯 차례 낮췄다. 흘수가 얕아지면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도 줄어든다. 이에 대응해 해운사들은 태평양 횡단 항로에 할증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2023~2024년 엘니뇨 당시 파나마운하는 하루 통항 선박 수를 대폭 줄여야 했고, 그 결과 선박들이 수주 동안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과거 엘니뇨의 가장 심각한 영향은 대체로 엘니뇨가 정점을 찍은 다음 해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2027년이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후 위험은 운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풍 바비로 인해 7월 상하이와 닝보, 칭다오의 항만이 폐쇄되면서 약 200만TEU에 달하는 선박 운송능력이 지연됐다. 이어 8월 초에는 태풍 돌핀이 상하이~닝보 항로를 다시 폐쇄했다.


병목 지점은 해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역이 집중되는 초대형 항만 역시 병목 지점에 포함되며, 해협과 항만 모두 기상 위험에 점점 더 크게 노출되고 있다.


어느 국가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돼 있나

각국의 수입과 수출 가운데 최소 한 곳 이상의 병목 지점을 통과하는 비중을 따져보자.


유럽은 수입과 수출 모두 세계 평균보다 낮다. 유럽 교역의 상당 부분이 역내 국가 간에 이뤄지거나 개방된 해역 또는 육로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정반대다. 군도가 많은 지리적 특성과 세계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 때문에 아시아 교역의 상당 부분은 좁은 해역을 통과한다. 한 번의 운송 과정에서 여러 병목 지점을 연속해서 지나는 경우도 많아 비중을 합산하면 100%를 넘기도 한다. 여기에 대만과 한국, 일본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까지 높아 위험 노출이 더욱 커진다.


호주는 병목 지점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경제권 가운데 하나다. 주요 시장과 모두 멀리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는 토레스해협에 의존하며, 수출품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역내 해상 통로를 거쳐 운송된다. ‘바다로 둘러싸인(girt by sea)’ 경제에 바다에도 좁은 길목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시사점

더 복잡하고 변동성이 커진 세계에서 기업들은 공급망 집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급업체를 다변화하고 있다. 현명한 대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다른 대륙에 있는 두 공급업체도 같은 해상 병목 지점을 통해 상품을 운송할 수 있다. 운송 경로가 겹친다면 위험은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기업은 공급망 집중 위험과 함께 운송 위험도 평가해야 한다. 단순히 ‘어디에서 상품을 조달하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가’까지 살펴야 한다.


결국 저렴한 해운 시스템과 취약한 해운 시스템은 상당 부분 동일한 시스템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 나타나는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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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의 공급망이 세계의 어떤 좁은 해상 통로를 거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그 통로가 더 좁아지거나 막혔을 때 발생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재형 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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