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감한 확장재정 추진
AI·스타트업 등 정부 투자 주도

일본 정부가 확장재정을 앞세워 경제 덩치 자체를 키우는 '사나에노믹스'에 승부를 걸고 있지만, 30년 만의 장기금리 상승과 중소기업 도산 증가가 복병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노믹스와 다르다"…명목 GDP 700조엔 노리는 다카이치 내각

최근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은 "아베노믹스와 사나에노믹스의 다른 점은 명목 GDP(국내총생산)에 있다. 다카이치 내각은 경제의 규모 자체를 늘리고 싶어한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과거 아베노믹스는 일본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경기를 살리는 데 큰 비중을 뒀다. 정부 재정과 구조개혁도 병행했지만, 초 저금리를 통해 기업과 가계가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 축이었다.

'빚내서 경제성장' 日다카이치…금리가 복병[주末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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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사나에노믹스는 정부가 전략적 투자의 마중물을 붓고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명목 GDP 자체를 키우는 데 한층 더 무게를 둔다. 쉽게 말해 물가 상승분까지 포함한 경제 전체의 몸집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스타트업,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에 재정을 집중해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겠다는 목적도 있다.

이 연구원은 "사나에노믹스는 아베노믹스를 일부 계승한다"며 "장기간 디플레이션과 구조적인 저성장 압력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부 주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사나에노믹스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 경제가 버블 붕괴 이후 30여년간 걸어온 방향을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그간 일본 기업의 미덕은 '빚내서 투자'가 아니라 '빚부터 갚기'에 가까웠다. 사나에노믹스는 나랏빚이 늘어도 경제 규모와 세금 수입이 더 빠르게 커진다면 빚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을 갖고 있다.

연구원은 "일본 확장재정 지지파는 실질 GDP는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명목 GDP를 늘린다면 국채 발행과 이자비용 증가를 세수 확대로 일정 부분 상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재정정책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 투자 끌어내야 하는데…"고금리가 정책 효과 떨어뜨릴 가능성"

문제는 기업 투자를 끌어내야 할 시점에 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엔화 약세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부담은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임금 상승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행이 금리 정상화에 들어서면서 기준금리는 1%까지 올라섰다.


정부의 국채 발행 확대 전망도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7월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을 발표하면서 2027년 이후 매년 10조엔 규모의 추가 재정지출을 예정했다. 기본방침에서 '재정 건전화'라는 언급이 삭제되면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커졌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6일 장중 2.830%까지 상승했다. 1996년 10월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서 사나에노믹스의 역설이 발생한다. 정부가 돈을 풀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더라도 자금조달 금리가 너무 높아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빚을 내 투자할 이유가 줄어든다. 특히 오랫동안 무차입 경영과 부채 축소에 익숙해진 일본 기업을 다시 투자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고금리는 정책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사나에노믹스가 투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라면 장기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들의 입장에서 고금리 상태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중소기업 도산 줄 잇고 인력난 심화…고른 질적 성장이 성패 열쇠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 지폐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 지폐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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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상승에 수입물가와 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기업 도산 건수는 1만300건으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1~7월 도산 건수가 6374건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7.11% 늘었다. 자본금 5000만엔 이상 기업의 도산은 200건 미만에 불과해 도산 기업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금 상승 압력 속에서 구인난을 견디지 못한 영세기업의 붕괴가 심각하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기업 도산은 2021년 56건에서 지난해 427건으로 8배가량 급증했다. 확장재정으로 경제 전체의 파이는 커질지 몰라도, 양극화와 영세기업의 도산이 심화하면 정책 동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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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원은 "결국 파이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으로 고른 성장의 여부도 사나에노믹스를 바라보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재정 투입 규모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이 실제 민간 기업의 투자 확대까지 이어지느냐에 사나에노믹스의 성패가 달린 셈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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