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장인' 안판석, 40년 연출 인생에 마침표 찍다
'하얀거탑'으로 욕망과 권력 해부하고
'봄밤'으로 사랑의 결을 어루만진 40년
유작 '연애박사' 남기고 향년 65세로 별세
드라마 '하얀거탑(2007)',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를 만든 안판석 감독이 별세했다. 12일 방송계에 따르면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1961년생인 안 감독은 1987년 MBC에 입사해 드라마 연출을 시작했다. 1994년 '베스트극장-사랑의 인사'로 데뷔해 40여년간 '짝(1997)'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풍문으로 들었소(2015)'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 등 굵직한 작품을 남겼다.
'짝' '장미와 콩나물(1999)' '아줌마(2000)' 등 초기작에선 여성 심리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연출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6년에는 차승원 주연의 코미디 영화 '국경의 남쪽'으로 스크린에 진출해 연출과 각본을 겸했다. 흐름을 바꾼 전환점은 '하얀거탑'이다.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조직 내부의 정치학을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여성적 취향이던 앞선 작품들과 달리 남성들과 그들에 깃든 어두운 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관료 조직의 부조리를 겨눈 시선은 김명민 등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와 맞물려 짙은 현실감을 완성했다.
한국 대표 연출가 반열에 오른 그는 이후 일상의 이면에 숨은 욕망과 계급 문제를 정밀하게 들여다봤다. '아내의 자격'에선 강남 사교육과 중산층 가족의 균열을, '밀회'에선 불륜이라는 소재 너머 예술계의 욕망과 위선을 그렸다. 상류층 가족을 블랙코미디로 풍자한 '풍문으로 들었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안 감독은 그 무렵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멜로 거장'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화려한 영상보다 인물의 감정과 대화를 앞세운 화법으로 밀도 있는 리얼리즘을 완성했다. 2024년 '졸업'에서는 대치동 학원가를 무대로 사교육 시장의 욕망을 다시 조명했고, 지난해 '협상의 기술'에서는 기업 인수합병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오는 10월 방송을 앞둔 ENA 월화드라마 '연애박사'는 그의 유작이 됐다. 추영우와 김소현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두 남녀가 로봇연구실에서 만나 로맨스를 키워가는 이야기다. 촬영과 편집을 이미 마쳐 예정대로 방영된다. 제작진은 이날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며 방송을 앞두고 떠난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깊은 슬픔에 빠져 계신 유가족이 고인과 조용히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장례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인과 MBC 입사 동기인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백지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세요. 멋진 감독이었고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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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13일 장례 절차를 시작해 15일 오전 9시30분 발인한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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