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국은' 박원근 지사 작품으로 전시…유족 무릎 꿇고 예 올려
박중양의 자도 '원근'…2019년 경매 기록만 믿고 검증 소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았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고(故) 박원근 애국지사의 아들 박용현 씨가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휘호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본인 제공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고(故) 박원근 애국지사의 아들 박용현 씨가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휘호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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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찾은 고(故) 박원근 애국지사의 아들은 전시장 한가운데 걸린 붓글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평생 아버지의 유품 한 점 갖지 못했던 그는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한동안 흐느꼈다. 박물관도 이 작품을 박 지사의 친필 유묵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불과 보름여 뒤 작품의 주인이 애국지사가 아니라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0일 작품을 급히 철수했고, 12일 유홍준 관장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냈다.

문제가 된 '일반시국은'은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이끈 영규대사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말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라는 뜻이다. 박물관은 지난달 1일 개막한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서 이를 충북 보은 출신 독립운동가 박원근(1912~1950)이 쓴 글씨로 소개했다.


박원근 지사는 일제강점기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벌이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뒤 유품도 거의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연 때문에 유족이 처음 작품을 마주한 장면은 지난달 여러 언론에 '7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흔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논란은 지난 10일 제천뉴스저널 주은철 대표가 "작품에 적힌 박원근은 애국지사가 아니라 박중양일 가능성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박물관은 즉시 작품을 철수하고 전문가 검증에 들어갔다. 현재 작품이 있던 자리도 가려진 상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2일 박물관 누리집에 게시한 '특별전 전시품의 검증 미흡에 대한 사과문'. 유 관장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출품한 '일반시국은'의 작자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며 박원근 애국지사 유족과 관람객에게 사과하고, 향후 유물 내력을 다각도로 교차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2일 박물관 누리집에 게시한 '특별전 전시품의 검증 미흡에 대한 사과문'. 유 관장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출품한 '일반시국은'의 작자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며 박원근 애국지사 유족과 관람객에게 사과하고, 향후 유물 내력을 다각도로 교차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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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에는 근거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자(字)가 바로 원근(源根)이다.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황해도지사, 충북도지사, 중추원 부의장,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지냈다. 3·1운동 당시에는 대구에서 자제단을 조직해 독립운동 진압에 가담했고, 1935년 '조선공로자명감'에는 식민통치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작품을 박원근 지사의 유묵으로 판단한 근거는 2019년 미술품 경매 기록이었다. 당시 해당 작품이 애국지사 박원근의 유묵으로 출품됐고, 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전시에 포함했다. 그러나 작품의 서명과 인물 이력, 소장 경위 등을 충분히 교차 검증하지 않은 채 기존 경매 기록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 관장은 사과문에서 "전시품의 검증 절차가 미흡했음을 반성한다"며 "앞으로 유물의 내력을 다각도로 교차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선조의 유물로 알고 예를 올렸던 애국지사 박원근 유가족들이 겪었을 혼란과 상심에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다"며 유족과 관람객에게 사과했다.


다만 현재 작품의 실제 필자가 박중양이라고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공식적으로는 '박중양의 작품일 가능성'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전문가 검증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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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은 전시 유물의 출처와 작자 확인 절차에 대한 문제도 남겼다. '우리들의 밥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식문화의 역사와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대규모 특별전으로 오는 10월25일까지 계속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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