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은 눈총 받을까봐, 카페·에어컨은 돈 때문에…"내 피서지는 지하철역·공항 바닥이야"
서울 쉼터 70% 경로당…"주민 텃세 있어"
공항과 전철역 거처로 삼자 시민들 '눈살'
인천공항 퇴거명령 반대…12일 기자회견
"내 유일한 낙이 종로 나와서 친구들 만나는 건데 날이 너무 더우니까…. 지하철역 바닥에 앉아 있는 거지."
10일 정오께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 개찰구 인근 계단과 타일 바닥에는 어르신 여럿이 삼삼오오 모여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인근 탑골공원 나무 그늘이나 바둑판 앞에 모여 담소를 나눴을 시간이지만 낮 최고기온이 33도 넘게 치솟자 시원한 지하 대합실로 피신한 것이다. 한일우씨(83)는 "집에 있으면 에어컨 전기요금이 무서워서 못 틀고 커피숍은 돈이 들고 눈치가 보인다"며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여기서라도 더위를 식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무더위쉼터가 아닌 지하철역이 폭염 취약계층에게 하나의 피난처가 된 셈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종로3가역처럼 지하에 위치한 역사는 기본 냉방이 가동돼 따로 무더위쉼터를 두지 않는다"며 "술을 마시거나 소란을 피우는 등 민원이 들어오면 정숙을 요청하지만 가만히 앉아 더위를 피하는 분들을 억지로 내보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역사 곳곳에서 노숙하는 이들까지 생겨나면서 시민들의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직장인 최모씨(32)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지나다니는데 통로 바닥에 누워 자거나 짐을 늘어놓은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며 "특히 폭염 때문에 악취가 심해 지나갈 때마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공항도 마찬가지다. 24시간 냉방에 편의시설까지 잘 갖춰져 '피서 핫플'로 소문났다. 고령층과 노숙인이 몰려들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최근 공항시설법을 들어 퇴거 명령서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에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등은 "마지막 생존 피난처에서 내쫓는 졸속 조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홈리스행동은 오는 12일 인천공항에서 퇴거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무더위쉼터가 전국에 수만곳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이 지하철역이나 공항 등으로 밀려나는 건 행정의 한계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 시내 무더위쉼터 4017곳 중 70%에 달하는 2813곳은 경로당처럼 특정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조건 없이 모든 시민이 들어갈 수 있다고 명시한 공간은 202곳으로 전체의 5% 수준에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은 일반 주민의 일시적 이용이 모두 가능하고 일부는 방문자 명부만 작성하면 이용할 수 있다"며 "기본 취지가 65세 이상 인근 주민 대상이다 보니 일반 어르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무더위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어르신도 많았다. 강숭화씨(79)는 "동네 경로당 말고 따로 무더위쉼터가 어디 있는지 우리 같은 노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가겠느냐"며 "괜히 덥다고 평소에는 다니지도 않던 경로당에 갔다가 눈총을 받을까 봐 무서워서 못 간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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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단순히 더위를 피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폭염 취약계층이 실질적으로 편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더위쉼터가 텃세나 접근성 문제로 제 기능을 못 하면서 많은 어르신이 지하철역이나 공항 같은 공공장소로 몰리게 된 것"이라며 "폭염 대응을 단순한 대피소 지정에 그칠 게 아니라 취약계층이 눈치 보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휴식 공간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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