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최대 테크 포럼 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세션은 로봇 복싱 대회였다. 권투장갑을 낀 두 로봇은 양팔을 뻗어 서로를 공격하고, 무릎 관절과 양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여 공격력을 더했다. 경기 종료 후 링 모서리 의자에 늘어져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도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중국산 유니트리 로봇 몸체에 현지 청년 엔지니어링 팀이 소프트웨어를 입혀 겨룬 해커톤이었다.
그렇게 열 달이 흐른 지금 유니트리는 13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하는 첫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업체라는 타이틀을 목전에 뒀다. 그사이 지난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 1위 기록도 거머쥐었다.
물론 유니트리도 약점은 있다. 보행·균형 제어는 뛰어나지만, 로봇의 '대뇌'인 인공지능(AI) 대형 모델 기술이 약하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 판매한 로봇의 60% 이상은 공장이나 가정이 아닌 대학·빅테크 기업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완전한 상용화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시장이 유니트리를 경계하는 이유는 강력한 플랫폼 '락인 효과'에 있다. 내로라하는 공학자들이 유니트리 로봇을 기본 플랫폼 삼아 코딩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은 이미 익숙한 유니트리 생태계를 표준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드론 시장을 장악한 중국 DJI의 성공 공식과 닮았다. DJI도 처음부터 완벽한 소프트웨어를 갖추지는 못했다. 단지 초가성비 드론 하드웨어를 대량으로 쏟아냈다. 그러자 전 세계 촬영 감독과 앱 개발자들이 DJI 규격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고, 하늘의 생태계가 DJI 중심으로 통일됐다. 미국 정부의 안보 제재에도 끄떡없는 1위 기업이 됐다.
더 무서운 점은 유니트리가 약점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니트리는 이번 기업공개(IPO) 조달 자금의 절반가량을 대뇌 개발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도 전략적 주주로 맞이했다. 고성능 몸체에 가성비 AI 두뇌가 이식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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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봇 산업의 생존 방식에 재정비가 요구된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라는 걸출한 기업이 있지만, 국내 대다수 로봇 벤처들은 좁은 내수 시장과 자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규제에 막혀 길거리 주행 테스트 하나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고, 대량 양산은 시작도 못 했다. 범용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을 피하고 보안과 신뢰성이 극대화된 고부가가치 특화(버티컬) 영역을 빠르게 선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로봇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한 국가 차원의 과감한 금융 지원과 제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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