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고전 서가 깨우고, '클래식' 2030 소장품으로
'프로젝트 헤일메리' 58배·'단종애사' 1000배 판매 급증
원작 역주행 넘어 고전·각본·대본집까지…영상 IP가 책의 수명 연장
3000년 가까이 된 이야기가 다시 서점가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지난 5일 개봉하면서 고전 원전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영상 콘텐츠의 흥행이 오래된 책을 다시 불러내는 '스크린셀러' 열풍이 출판시장의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11일 출판계에 따르면 올 들어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흥행을 계기로 출간된 지 수년에서 수십 년 된 책이 베스트셀러로 역주행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화된 원작소설의 판매가 함께 늘어나는 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100년 이상 된 작품과 고전, 번역·해설서, 각본집까지 수요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예스24 8월 첫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현대지성의 '오디세이아'는 3위에 올랐다. 판매량은 전주보다 365.5% 증가했다. 교보문고에서도 제목에 '오디세이'나 '오디세이아'가 포함된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3월 52.9%, 4월 87.5%, 5월 194.0%, 6월 291.7% 늘어난 데 이어 7월에는 595.5% 급증했다. 올해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관련서는 현대지성의 '오디세이아'였고, 완역본과 입문서·원전 번역본 등으로 수요가 번졌다.
올해 출판시장에서는 이처럼 영상 콘텐츠를 타고 구간(舊刊)이 되살아나는 사례가 두드러진다.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동명 영화 개봉 이후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5731.7% 급증하며 예스24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에서도 개봉을 앞둔 3월 첫째 주 전주보다 9계단 상승한 종합 16위에 오른 데 이어 상반기 전체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박민규가 2009년 발표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넷플릭스 영화 공개 이후 판매량이 약 112배 뛰었고, 교보문고 종합 5위까지 올라섰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에는 이광수의 100년 전 소설 '단종애사' 판매량이 약 1000배 늘고 교보문고 한국소설 17위에 진입했다.
과거 스크린셀러가 인기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최근에는 책의 '나이'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간된 지 오래돼 서점 매대에서 밀려났던 책도 영화와 OTT를 만나면 신간 못지않은 판매력을 보인다. 영상 콘텐츠가 책의 판매 생명주기를 다시 시작시키는 셈이다.
영화·OTT 흥행을 계기로 과거 출간작이 다시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년 동기 대비 57.3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약 112배, '단종애사'는 약 1000배 판매가 늘었다.
원본보기 아이콘교보문고에서도 올 상반기 소설 판매권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3% 늘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전체 단행본 판매에서 소설이 차지한 비중은 10.6%였다. 1~5월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소설이 8종, 100위 안에는 30종이 이름을 올렸다. 교보문고는 젊은 세대의 '텍스트힙'과 함께 짧고 빠른 영상 소비의 반작용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서사를 찾는 수요가 늘어난 점도 소설 강세의 배경으로 분석했다.
특히 영상 콘텐츠를 매개로 한 고전의 재발견이 두드러진다. 교보문고 상반기 외국소설 베스트셀러 30위 안에는 '싯다르타' 등을 포함한 세계문학전집 12종이 이름을 올렸다. 예스24에서도 올 상반기 해외소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9% 증가했고, 상위 50종 가운데 31종이 2000년 이전 발표된 작품이었다. 20대와 30대 구매량도 각각 29.7%, 33.0% 늘었다. 오래된 작품이 새로운 세대의 독자에게 다시 발견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스크린셀러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영상화된 원작 한 권에 수요가 집중되던 데서 벗어나 번역본과 해설서, 각본·대본집 등으로 구매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오디세이아' 역시 기존 번역본과 함께 새 번역과 해설서가 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오는 19일에는 영화 '오디세이' 공식 각본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교보문고는 영화 개봉 이후 관련 출판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각본과 대본집 시장의 성장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원작을 읽는 것을 넘어 인상 깊게 본 영상 콘텐츠를 책으로 소장하려는 팬덤 수요가 시장을 키우고 있다. 교보문고도 인기 드라마와 영화의 흥행에 따라 대본·각본집 출간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작품을 소장하려는 팬덤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영화 '오디세이' 개봉을 앞두고 관련 도서 판매가 가파르게 늘었다. 교보문고 기준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4월 87.5%에서 7월 595.5%까지 치솟았다. 완역본과 해설서 등으로 관심이 확산됐다.
원본보기 아이콘2003년 개봉한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은 23년 만에 각본집으로 다시 독자를 만났다. '클래식 각본집'은 지난주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5위, 예술 분야 1위에 올랐다. 출간에 앞서 진행한 독자 펀딩에서는 목표액의 869%를 달성하며 1000만원 넘는 금액을 모았다.
젊은 독자층의 호응도 눈에 띈다. '클래식 각본집' 구매자 가운데 30대가 30.9%, 20대가 28.2%로 20·30대 비중이 59.1%에 달했다. 화제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대본집은 교보문고 8월 첫째 주 종합 7위로 진입했다. 구매층은 40대 28.4%, 30대 27.8%, 20대 20.7% 순이었고 여성 비중은 70.9%에 달했다. 각본·대본집이 좋아하는 장면과 대사를 간직하려는 독자들의 '소장형 콘텐츠'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셀러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영상 콘텐츠가 되살리는 책의 시간적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수년 전 출간된 소설은 물론 100년 전 작품과 3000년 가까운 고전까지 다시 베스트셀러 매대로 불러내고 있다. 반대로 오래전 개봉한 영화가 각본집으로 재탄생해 새로운 세대의 독자를 만나는 역방향 소비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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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야기가 영화·OTT·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재발견돼 장기 흥행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출판시장의 핵심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며 "영화화나 유명인 추천 등 미디어 노출을 계기로 과거 출간작이 다시 주목받으며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르는 양상도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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