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투자대상 제한·납입한도 이월 폐지 논란
'주가누르기 방지안'도 취지에 어긋난 정부안 도마
'생산적 금융' 핵심 정책 잇단 설계 결함
정부 보완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정부가 제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장기투자를 유도하겠다며 내놓은 ISA 개편안이 오히려 투자 기간과 선택권을 제약하고, 대주주의 고의적인 주가 억제를 막겠다며 마련한 제도는 까다로운 적용 요건 탓에 손쉽게 규제를 비켜갈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국정의 주요 축으로 내건 이 대통령이 정책의 방향뿐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다시 따져보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8.6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8.6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8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전날 오전 내부 상황점검회의에서 지난 3일 발표된 세제개편안과 관련한 투자자들의 반응을 보고받은 뒤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 방안을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ISA 개편을 두고는 "정확히 준비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는 취지로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가 누르기 방지 방안에 대해서도 당초 개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시 들여다보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정책 목표와 제도 설계 사이의 간극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마련한 ISA 개편안은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사용하지 않은 연간 납입한도의 이월을 폐지하는 방향을 담았다. 국내 기업과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설하는 '생산적 금융 ISA'의 투자 대상도 국내 주식과 국내 자산 중심의 펀드 등으로 제한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됐더라도 S&P500이나 나스닥100 등 해외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투자 대상에서 빠지는 구조다.

이는 즉각 장기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을 불렀다. ISA는 이자·배당소득에 비과세 또는 분리과세 혜택을 부여해 장기간 자산을 불리는 대표적인 절세 계좌다. 2021년 제도 개편 때는 의무가입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면서도 계약 연장은 허용하고, 그해 사용하지 못한 납입한도를 다음 해로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등 운용의 유연성을 높였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장기 투자를 장려한다면서도 계좌 운용 기간과 자금 운용의 선택지는 되레 좁혔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청년층과 이른바 '서학개미' 사이에서는 세제 혜택을 지렛대로 국내 주식 투자를 사실상 강제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됐다. 정부가 국민의 자금을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기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투자 매력을 높이기보다 투자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전략에서 생산적 금융 ISA와 청년형 ISA 도입 등을 자본시장 수요기반 확대 방안으로 제시해왔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역시 당초 법안 추진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을 부각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상장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평가 기준일 전후 각각 2개월, 총 4개월간의 종가 평균을 토대로 가치를 산정한다. 주가가 낮을수록 지배주주의 상속·증여세 부담도 줄어드는 만큼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에 소극적으로 나서 주가 상승을 억제할 경제적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제도 도입의 출발점이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제시한 법안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에 못 미치는 저평가 상장기업의 주식을 상속·증여할 경우 시장가격만이 아니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함께 반영해 과세가액을 산정하는 방식을 담았다. '주가를 낮게 유지하면 세금도 줄어드는' 현행 구조를 고쳐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지배주주에게도 유리하도록 유인을 뒤집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가 세제개편안에 담은 방안은 적용 대상을 훨씬 좁혔다.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PBR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시장에서는 하위 10% 등에 해당하는 기업을 우선 걸러낸 뒤 고의적인 주가 억제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다. 고의성이 인정되면 상속·증여 때 주식 평가액을 30% 이상 높여 과세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요건이 오히려 새로운 '회피 매뉴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특정 기간 PBR 순위만 일시적으로 끌어올려 장기 저평가 기업이라는 요건에서 벗어날 경우 제재를 피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적용 여부를 법률상 객관적인 기준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의 판단에 상당 부분 맡긴 점도 과세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소영 의원은 정부안이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아이디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다만 재검토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낮은 PBR이 모두 지배주주의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업황 부진이나 낮은 수익성, 규제, 지주회사 할인 등 기업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대규모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의 순자산가치(NAV)를 일률적으로 산정하기도 쉽지 않다. 재계와 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의적인 주가 억제'와 정상적인 시장 저평가를 가려낼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이번 재검토 지시는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 전반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생산적 금융 ISA 도입과 주가 누르기 방지 목적의 상장주식 평가제도 개편을 나란히 '생산적 금융 대전환'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가계 자금을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키고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불과 몇 주 만에 두 핵심 정책에 대해 대통령이 설계도부터 다시 짜라고 주문한 셈이다.

AD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ISA의 계약기간과 미사용 납입한도 이월 문제, 투자 가능 자산의 범위 등을 다시 검토하는 한편 주가 누르기 방지 제도의 적용 기준과 과세 방식도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국회에 세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