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구조적 공급충격 따른 인플레 압력 야기
가공식품·서비스가격↑…근원물가 상승 요인으로
중앙은행 통화정책 구조적 제약…경계해야

[초동시각]페루 멸치와 한국은행의 물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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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지나며 더위를 꽤 덜어낸 바람이 분다. 어느 때보다 반가운 변화다. 지난주 건물 밖을 나서자마자 훅 끼쳐 들어왔던 뜨거운 공기는 불쾌한 수준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기후 위기가 경고로는 안 되니 이제 실력을 행사하며 위협을 하는구나 싶었다.


폭염은 그 자체로 괴로울 뿐 아니라, 후유증을 남기면서 우리에게 한 번 더 고통을 준다. 대표적인 게 물가다. 산지를 덮친 폭염은 당근과 사과를 태우고 상추를 녹이면서 농가를 시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끌어올린다. 농산물 할인에 정부 지원이 반영되며 일부 상쇄되겠지만, 이로 인한 물가 영향은 직접적이다.

올해는 전 세계가 폭염에 신음했다. 페루에선 멸치가 안 잡히고 파나마 운하도 가뭄으로 통행에 차질이 생겼다. 원인은 '슈퍼 엘니뇨'다. 태평양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큰 폭으로 올라 전 지구적 기상이변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금통위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금통위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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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폭염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한국은행에도 걱정을 안겼다. 지난달 기준금리 결정을 위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기후 인플레이션이 언급됐다. 엘니뇨에 따른 이상 기후로 글로벌 식료품 수급 등에 차질이 생기면 국내 물가가 추가로 자극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아직은 글로벌 이상 기후가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지만, 기후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경우 특히 수입 물가를 통한 파급효과가 소비자물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선 한은 연구도 글로벌 이상 기후 충격이 물가상승률을 유의미하게 높이고, 충격 강도가 클수록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비선형적으로 커진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이 무서운 건 이로 인한 구조적 공급 충격이 지속해서 인플레이션에 압력을 가할 수 있어서다. 폭염은 밥상 물가만 올리는 게 아니다.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 물가가 뛰게 하고, 외식 등 서비스 가격 상승 역시 불러온다. 이는 통화정책 결정의 핵심 지표인 근원물가를 끈적하게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중앙은행 운신의 폭을 줄이게 된다.


폭염이 아니어도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한은이 지난달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데도 물가 걱정이 크게 작용했다. 금통위원들은 반도체 업황 호조에 따른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우려하고 있다. 이달 연속 인상의 핵심 가늠자도 물가다. 신현송 총재가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 한 지난달 근원물가(2.6%)는 전월보다 상승률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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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당시 느낀 두려움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이제 바람이 분다고 잊어서는 안 된다. 타들어간 농작물은 후유증을 오래 남기고, 이상 기후의 위협은 다시 찾아올 여름을 더 뜨겁게 데울 것이다. 기후 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중앙은행이 계산에 넣어야 할 물가 변수가 됐다.


김유리 금융부 차장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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