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함양아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재난·기아·AI를 숫자 밖의 몸으로 되돌리다
화장한 사람의 재가 바다 위로 흩어진다. 시간은 거꾸로 흘러 장례에서 출산으로 향하고, 그 사이 냉전 종식과 금융위기, 팬데믹, 인공지능의 부상이 겹쳐진다. 함양아의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은 한 사람의 생애와 반세기의 세계사를 22분짜리 8채널 영상에 포개놓는다.
함양아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에 설치된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2026). 정치·경제·기술과 군중의 장면을 원형 화면에 중첩해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의 관계망을 펼쳐 보인다. 아트선재센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함양아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가 붙들어온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개인의 몸과 감정에는 무엇이 남는가. 전시는 2018년부터 이어온 동명 프로젝트의 신작과 주요 작품을 한데 모았다.
관객은 아트선재센터 2층의 원형 구조물 안에 선다. 화면은 360도로 이어지지만 모든 장면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눈앞의 팬데믹을 보는 동안 등 뒤에서는 금융시장이 무너지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른 사람의 죽음을 놓친다. 세계 전체를 보여주는 파노라마가 오히려 인간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를 드러낸다.
'잠'(2015~2016)에서 사람들은 체육관 바닥에 줄지어 누워 있다. 평소 시민의 건강을 위한 체육관은 재난이 닥치자 대피소이자 임시 숙소, 관리 공간이 된다. 보호하는 사람과 감시하는 사람, 피해자와 관찰자의 경계도 흐려진다. 제도는 사람을 살리지만 동시에 몸을 분류하고 배치한다.
함양아는 재난을 예외적 사고로 보지 않는다. 사고가 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평상시의 구조를 추적한다. 누가 먼저 구조되고, 누구의 고통이 기록되며, 어떤 희생이 불가피한 비용으로 처리됐는가.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보이지 않지만, 망가지는 순간 자신의 질서를 드러낸다.
'주림 2.0'은 음식이 넘치는데도 사람이 굶는 세계를 다룬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는 수억명이 굶주림을 겪는 반면, 가정과 식당·소매점에서는 해마다 10억t이 넘는 음식이 버려진다. 부족한 것은 음식의 총량보다 그것을 살 돈과 옮길 체계, 안전하게 먹을 권리다. 주림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배분의 결과다.
노동과 기술도 다르지 않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세계 소득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지난 20년간 줄었다. 인공지능 시장은 빠르게 커지지만 수익과 기술은 소수 기업과 국가에 집중된다. 기술은 모두의 일을 덜어준다고 말하지만, 누구에게는 생산성이 되고 다른 누구에게는 일자리와 숙련의 상실이 된다.
함양아는 이런 거대한 수치를 다시 몸으로 돌려보낸다. 누가 잠들지 못했는지, 누가 굶었는지, 누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쓰러졌는지를 묻는다. 통계가 고통의 규모를 기록한다면 미술은 그 숫자 안에서 지워진 표정과 움직임을 불러낸다.
함양아 개인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에 설치된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2026). 세계 각지의 참여자들이 휴대전화로 기록한 사적 독백을 여러 화면에 펼쳐, 개인의 목소리가 공동의 서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트선재센터
원본보기 아이콘3층의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에서는 거대한 역사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흩어진다. 가자지구를 떠난 팔레스타인 여성, 폭염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 생태 연극을 하는 예술가가 휴대전화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작가는 이를 '감정의 아카이브'라고 부른다. 위키피디아에는 사건과 날짜가 남지만, 그 시대를 산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좀처럼 저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언을 미술관으로 옮긴다고 곧바로 연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한 사람의 전쟁 경험을 몇 분 듣다가 다음 화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고통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될 위험을 품는다. 냉전과 금융위기, 팬데믹과 AI를 한 화면에 겹치는 작업 역시 서로 다른 비극을 장대한 이미지로 평평하게 만들 수 있다.
함양아가 작품 제목에 '정의되지 않은'이라는 말을 남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세계를 완전히 설명했다는 선언 대신, 하나의 시선으로는 결코 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관객은 원의 중심에 서지만 전지적이지 않다. 반드시 놓친 화면이 있다.
이 전시가 요구하는 것은 거대한 해답이 아니다. 내가 보던 장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보지 못한 쪽으로 몸을 돌리는 일이다. 통계는 세계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말한다. 함양아의 작품은 그 숫자가 정확할수록 더 쉽게 지워지는 한 사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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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화면을 한 바퀴 돌아도 세계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 실패에서 사회를 제대로 보는 일이 시작된다. 전시는 10월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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