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느는데 역내 생산 수년째 제자리
중국차 열풍에 중국 저가 소비재는 인기
"전통 제조업은 빼앗기고 AI 투자도 밀려"

유로존의 산업생산이 몇 년째 회복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건은 팔리는데 유럽 공장이 그만큼 돌아가질 않는 것이다.


유럽 공장의 빈자리를 채운 건 중국산이다.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팔린 새 차 가운데 BYD·체리·지리 등 주요 중국 브랜드의 합산 점유율은 10%를 넘어섰다. 1년 전 6.8%에서 3%포인트 넘게 뛰었다. 최대 45%의 관세를 물면서도 점유율이 늘었다.

옷과 생활용품은 더하다.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건너온 저가 소포가 쏟아지면서, 프랑스에서는 문을 닫은 현지 패스트패션 업체까지 나왔다.


KB증권 권희진 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유럽의) 전통 제조업은 중국으로부터 저가 수입 물량 확대되며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고, 인공지능(AI) 투자에서는 동아시아 등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설문은 6개월째 좋다는데…밀린 주문 처리한 효과

차도 옷도 중국산…"전기요금도 너무 비싸" AI도 밀려나는 유럽의 위기[주末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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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유로존 제조업 PMI는 51.9로 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기준선인 50을 웃돈 것도 6개월째다.


PMI(구매관리자지수)는 기업의 구매 담당자들에게 지난달과 비교해 형편이 나아졌는지 묻는 설문 지표다. 50을 넘으면 나아졌다고 답한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방향은 알려주지만 생산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설문 결과는 좋은데 산업생산은 제자리인 상황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미국의 관세 부과를 앞두고 유럽 기업들이 수출 주문을 미리 받으면서 산업생산이 일시적으로 뛰어올랐다. 앞당겨진 주문이었던 만큼, 물량이 소진되자 생산은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7월도 구조는 유사하다. 공급망 압박이 풀리며 적체됐던 주문이 처리되자 생산이 늘었을 뿐, 새로 들어오는 주문의 개선세는 미미했다. 밀린 일을 몰아서 끝내는 것과 새 일감이 들어오는 것은 다르다. 유로존 안에서 제조업 수요를 새로 만들어낼 동력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금액은 제자리, 물량은 증가…단가로 밀어낸 중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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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연구원이 먼저 짚는 대목은 소비와 생산의 괴리다. 실물 경기를 보여주는 두 지표인데, 유로존에서는 소매판매가 늘어나는데도 산업생산이 따라 오르지 않는 상태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소비는 느는데 역내 생산은 하지 않는 이례적인 국면이라는 것이다.


수입 통계를 보면 흐름이 뚜렷하다. EU 총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이후 금액 기준으로는 정체돼 있는데, 물량 기준으로는 계속 커지고 있다. 쓰는 돈은 비슷한데 들어오는 물건 수는 늘었다는 뜻이니, 그만큼 단가가 낮아졌다는 의미다. 값싼 중국산 소비재가 밀려들면서 역내 소비재 생산이 급감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흐름이 소비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는 기계류와 일반 제조업 제품 같은 산업재로도 확산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유럽 싱크탱크 CER은 자동차·기계·항공기 제조 등 자본재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고, 프랑스 총리실은 중국과의 경쟁으로 유럽 제조업의 약 55%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투자도 유럽을 비껴간다…전력망과 규제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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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제조업이 밀리면 신산업이 받쳐주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유럽은 AI 밸류체인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다.


동아시아는 반도체처럼 AI에 들어가는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기업의 비중이 높은 반면, 유로존은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비중이 크다. 권 연구원은 "AI 투자가 늘어도 그 돈이 유럽 공장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에서 AI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봐도 유로존은 미국이나 한국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역외 기업이 유럽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유인도 줄고 있다. 유럽의 전기요금은 미국보다 눈에 띄게 비싸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영국, 독일이 특히 높은 편이다. 전력망 제약도 있다. 유럽 데이터센터 산업의 핵심 시장인 FLAP-D(프랑크푸르트·런던·암스테르담·파리·더블린)는 이미 수요가 몰려 신규 전력망 연결까지 7~1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전력에 여유가 있는 북유럽은 방향이 반대다. 에너지 자원을 보호하고 전기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AI 인프라 투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전기가 비싼 곳은 지을 이유가 적고, 전기가 남는 곳은 문턱이 높아지는 구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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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연구원은 "공급망 압박이 해소되면서 밀렸던 생산이 반등하는 것을 넘어 유의미한 개선세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 제조업 신규 수요를 만들어낼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AI 투자 확대로 전통 제조업 부진을 보완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기저효과 이상의 제조업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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