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67개 점포 가오픈 뒤 13일 정식 개장
식품사 "선입금 원칙" 조건부 납품
1000평 단층화·PB 중심 '트레이더 조' 모델 이식
인수자 찾기 난제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DIP(Debtor In Possession·회생기업 운영자금)를 확보하며 영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회생계획안 폐지 위기까지 내몰렸던 홈플러스는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국 점포 재개장과 공급망 복원에 나섰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자금 지원이 회생의 출발선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DIP는 법원의 관리 아래 회생기업의 영업을 이어가기 위한 긴급 운영자금인 만큼, 회생을 보장하는 자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약 한 달 동안 영업 정상화와 현금 창출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회생계획안 인가와 본체 매각까지 연쇄적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홈플러스, 오늘부터 영업재개…운명의 한 달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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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원 수혈 완료…22일 만에 점포 재가동

7일 유통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이날부터 핵심 점포 67곳을 대상으로 가오픈하고, 오는 13일 정식 영업을 재개한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5일 서울회생법원의 허가를 받아 2000억원의 긴급 운영자금을 최종 수령했다. 지난달 16일 메리츠증권·메리츠캐피탈·메리츠화재 등 메리츠금융 3사가 지원을 의결한 지 약 3주 만이다.

홈플러스는 확보한 자금을 거래처 대금 지급에 우선 투입하며 멈췄던 공급망 복원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실제 지난 4일부터는 전 점포에 인력을 투입해 재개장 준비에 착수했다. 지난달 13일 전 점포 임시휴업 이후 22일 만이다. 직원들은 매대 정비와 재고 점검, 신규 상품 진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금이 집행되면서 상품 공급도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 거래가 중단됐던 농·축·수산물 등 신선식품과 유제품, 가공육 공급이 우선 재개되고, 매장 기반 당일배송을 담당하는 이커머스 사업도 배송 차량과 피커(Picker) 인력을 재정비해 온·오프라인 영업을 동시에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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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금이 원칙"…식품사는 납품 준비

재개장 일정에 맞춰 주요 식품업체들도 납품 준비에 들어갔다. 홈플러스는 주요 식품사에 이날까지 제품을 공급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과 CJ제일제당 등 일부 업체는 이미 납품을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정식 재개장 시점까지 일정이 다소 남은 점을 감안해 유통기한이 긴 상온 제품과 냉동 제품을 중심으로 납품하고 냉장제품 등 다른 카테고리로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우유, 롯데웰푸드, 풀무원, 농심, 롯데칠성음료 등은 납품을 전제로 거래 조건과 품목 등을 조율하고 있다. 서울우유와 롯데웰푸드는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진열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납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오픈 예정인 7일에는 제품 납품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우나 13일 정식 재개장 전 납품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업체들은 설명했다. 풀무원은 13일 납품을 개시할 예정이다.


다만 삼양식품, 오뚜기, 오리온 등은 납품 여부를 아직 검토하고 있다. 일부는 홈플러스와 관련한 내용을 협의 중이며, 일부는 내부적으로 납품 자체를 진행할지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이트진로 등 주류업계는 주류도매상과 홈플러스 간에 협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사들은 이전에 대금 미정산 사태가 벌어졌던 만큼 납품 조건으로 선입금이 반드시 필요하며, 해당 금액에 해당하는 제품만 납품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중소 식품기업까지 모두 포함하면 미정산 금액이 2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홈플러스는 급히 확보한 자금을 식품사에 지급하며 주요 품목부터 납품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정산 대금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제품을 납품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대금 지급에 맞춰 납품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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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승부수…'트레이더 조' 실험 통할까

하지만 업계는 점포 문을 다시 여는 것만으로는 홈플러스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온라인 쇼핑 확산과 소비 침체로 대형마트 산업 자체가 성장 정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재개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Trader Joe's)를 벤치마킹한 새로운 운영 전략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트레이더 조는 약 4000개의 핵심 상품만 운영하고, 이 가운데 80% 이상을 자체브랜드(PB)로 구성해 높은 수익성과 재고 회전율을 확보한 대표 사례다.


홈플러스 역시 복층 중심의 대형 매장을 약 1000평 규모의 단층 형태로 압축하고, 비식품과 가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신선식품과 PB 브랜드 '심플러스', 간편식 브랜드 '홈밀',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상품 구성을 재편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PB 확대가 수익성 개선 전략인 동시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제조사 공급망을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PB 비중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심플러스는 초저가 전략으로 집객 효과를 냈지만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트레이더 조는 소비자가 일부러 찾는 독창적인 PB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충성 고객을 확보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의 경쟁력은 PB 비중 자체가 아니라 차별화된 상품 기획력에 있다"며 "홈플러스도 단순히 저렴한 PB를 늘리는 데 그칠 경우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소비자가 찾아올 이유를 만드는 독점 상품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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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한 달…회생·M&A 가를 시험대

시간도 많지 않다. 서울회생법원이 제시한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은 오는 9월4일이다. 관계인 집회와 채권단 협의 절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앞으로 한 달 안에 영업 정상화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7일 가오픈 이후 이어질 약 4주간의 실적이 채권단 설득의 핵심 근거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매출 증가보다 방문객 수와 객단가, 재고 회전율, 현금 창출 능력이 실제 회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신뢰를 회복해 이탈한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궁극적으로 홈플러스 회생의 종착지는 본사와 대형마트, 온라인 사업을 포함한 잔존 사업부문의 인수합병(M&A)이다. 이번 영업 재개 역시 기업가치를 높여 잠재 인수자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홈플러스는 전국 126개 점포 가운데 약 58개 점포를 직접 보유하고 있어 부동산 자산 측면에서는 일정 수준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업이 정상화될 경우 전국 오프라인 거점과 온라인 사업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투자 포인트다.


다만 잠재 인수자들은 단순 매출보다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과 점포 생산성 개선 여부를 더욱 중요하게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추진된 매각에서는 본입찰에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으며 유찰됐다. 여기에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약 1조2000억원 높다고 평가했다. 사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자산을 처분하는 편이 채권 회수에 유리하다는 의미여서 회생계획안 심사와 향후 매각 협상 모두에 적지 않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회생계획안이 부결되거나 본체 매각이 끝내 무산될 경우 국내 유통시장 재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홈플러스의 정상 영업 당시 연매출은 약 7조원으로, 이 가운데 익스프레스를 제외한 대형마트와 온라인 사업 매출만 약 6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이 물량의 30%만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로 이동해도 양사가 각각 약 1조8000억원의 매출 증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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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법원의 DIP 승인은 회생 가능성을 인정했다기보다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할 시간을 준 의미에 가깝다"며 "영업 정상화와 현금흐름 개선이 확인되지 않으면 회생계획 인가와 M&A 모두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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