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전략 광물·농산물 최대 공급원
무한한 잠재력에 '몸값' 치솟은 남미
中 영향력 크지만 리스크 탈피 움직임
이 대통령 순방 후속 전략 모색
강대국 패권다툼 영향서 벗어나
가장 신뢰할 '중립 파트너' 돼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3일까지 7박11일의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남미 3개국(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을 순방하고 독일을 거쳐 귀국했다.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과의 인공지능(AI) 첨단산업 협력 논의가 주목받았지만, 단연 남미 3개국을 방문한 일정이 이번 순방에서의 진정한 핵심이자 전략적 분수령이었다. 남미는 리튬·구리·희토류 등 핵심 전략 광물과 농산물의 세계 최대 공급원이자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거대 시장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와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자원 확보 다변화와 남미 시장으로의 진출은 우리 경제에 중대한 기회이자 까다로운 과제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브라질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 대통령관저 앞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브라질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 대통령관저 앞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포옹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남미 통상 지형의 중심에는 거대 무역블록인 '메르코수르(MERCOSUR)'가 있다. 1991년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가 '아순시온 조약'에 서명하며 출발한 메르코수르는 세계적인 자원 및 식량 공급기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 중국 등과 함께 이미 20여년 전부터 메르코수르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 왔으나, 농업 시장 개방과 환경·노동 기준, 내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며 진전과 중단을 반복해 왔다. 특히 역내 압도적 경제력을 지닌 브라질의 리더십 부재와 분열이 협상 동력을 저하시켰다.

최근 EU와 메르코수르가 25년 만에 서명 및 비준 국면을 맞은 사실은 글로벌 통상 전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U 집행부는 이 협정을 대중국·대미 리스크에 대응할 경제안보 및 전략적 자율성 확보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남미 국가들의 비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폴란드 등 유럽 역내 농업계의 거센 반발과 유럽의회의 사법재판소(CJEU) 법률 검토 요청으로 정식 발효까지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자원·에너지 전환 경쟁 속에서 남미의 전략적 몸값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는 점이다. 이번 대통령 순방에서 정부가 자원 외교와 핵심 광물 공급망 확충 실적을 거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미 현장의 실상은 미·중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깊숙이 뿌리내린 구조를 재편하는 국면에 돌입해 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대폭 줄이고 브라질을 필두로 한 중남미로 조달처를 발 빠르게 전환했다. 단순 구매를 넘어 현지 농가 구매부터 저장·유통·물류까지 상업화 전 과정을 관리·주도하며 중남미 농산물 공급망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중국식 시장접근 방식이 나날이 강화 및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인프라 투자를 통한 무역 경로의 '고착화(Lock-in) 효과'다. 브라질 산투스항의 대규모 터미널 확장과 페루 찬카이 초대형 거점 항만 건설 등 중남미 주요 관문 항만과 도로·철도를 중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높은 물류비가 약점이었던 남미에서 중국이 직접 인프라를 개보수함에 따라 수송 속도와 단가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이렇게 한번 구축된 대규모 물류 인프라는 향후 미·중 무역 전쟁이 완화되더라도 과거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강력한 구조적 고착화를 낳는다.


나아가 중국은 단순 자원 수입을 넘어 핵심 광물, 이차전지, 에너지 전환은 물론 텔레콤, 도시 모빌리티 등 남미 국가들의 핵심 사회간접자본(SOC) 전반으로 협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이 남미 국가들에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든 반면, 중국은 거대 시장과 막대한 자본, 소프트 외교를 앞세워 남미를 자국 무역망에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이 남미를 밀어내고 중국의 자금과 기술이 남미를 끌어당기는 쌍방향의 힘이 작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남미 밀착에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통제되지 않은 저가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국내 산업과 일자리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남미 현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 당국 역시 고급 기술 유출을 우려해 비야디(BYD)나 지리자동차 등 자국 첨단 기업의 현지 생산 승인을 지연시키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원자재 편중 심화, 부채 문제, 아마존 환경 파괴 논란과 함께 미국의 안보적 반격이 상시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연합뉴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결국 이 같은 남미의 지정학적 지형 변화는 우리나라에 심대한 '양날의 검'이다. 핵심 광물과 물류, 전기차·통신 시장에서 중국의 남미 선점은 우리 첨단 산업에 상당한 위협이다. 그러나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리스크를 '헤징(Hedging)'하려는 남미 국가들의 속내 역시 명확하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나라가 파고들어야 할 전략적 공간이다.


무엇보다 남미 지역과의 최대 통상현안인 FTA 협상을 조기에 타결해야 한다.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 업그레이드 협상에 우리나라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메르코수르와의 FTA 협상에 대한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와의 정상회의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 EU·메르코수르 FTA를 모델로 삼아 남미 국가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남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은 메르코수르와의 FTA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패권 다툼에서 벗어나 남미 국가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중립적·혁신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단순한 자원 약탈형 거래를 넘어, 현지 산업 육성과 기술 협력,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결합한 상생형 통상 외교를 펼칠 때다. 이번 대통령의 순방으로 마련된 외교적 물꼬가 일회성 성과에 그치지 않고 남미와의 장기적·다각적 경제안보 연대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치밀한 후속 실행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AD

[정인교의 트레이드 오프]더 치밀하게…'남미의 친구'가 되어라 원본보기 아이콘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