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400% '서울형 정비모델'을 아십니까
인허가 반토막·공사비 폭등…기존 재개발 한계
5~6개 사업부지 하나로 묶어서 7~12층 이하로

[정책의 맥]아파트와 빌라 사이…중층고밀 주택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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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 안정과 주거 질 향상을 위해 주택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주택공급 확대가 유일한 해법' '닥치고 공급' 등 자극적인 단어가 난무하는 것도 그만큼 시장의 공급 절박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의욕적인 목표 설정, 잇단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택공급 위축 추세는 좀처럼 반전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주택공급 실적은 인허가, 착공, 준공 등 모든 지표에서 2016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전국·수도권·서울 가릴 것 없이 동일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2016년 74.6만가구에 달했던 전국 주택 인허가는 2025년 38만가구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서울의 주택 착공실적 역시 9.7만가구에서 3.2만가구로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 준공 주택 중 아파트 비중이 91%를 차지한 반면, 단독·다가구·연립·다세대 등 비아파트 주택은 겨우 5089가구에 불과했다. 서민의 주거사다리가 되어주던 비아파트 공급이 사실상 고사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착공 기준 연평균 수도권 27만가구, 서울 6.7만가구라는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최근 3년간(2023~2025) 평균 착공 물량의 1.74~2.17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착공 실적은 수도권 6.6만가구, 서울 1.3만가구에 머물며 지난 3년 상반기 평균치(수도권 6.5만가구·서울 1.3만가구)를 겨우 턱걸이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올해 목표 달성률은 절반에 그칠 전망이다. 애초에 목표가 비현실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정책의 작동 기제가 고장 난 것일까?


단기간에 주택공급 추세를 전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서울의 주택 역사를 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획기적 공급 전환점은 늘 토지공급뿐만 아니라 건축·주차장 규제, 분양·금융제도, 조세 정책이 입체적으로 결합해 작동했을 때 찾아왔다.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한 단독주택 공급, 1970년대 전체 공급의 40%를 담당했던 연립주택,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아파트지구 지정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에는 택지개발촉진법, 국민주택기금, 주택 200만가구 계획과 합동재개발이 대규모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반대로 과도한 규제는 공급을 순간 정지시켰다. 1990년대 규제 완화로 서울 주택공급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2002년 주차장 기준이 강화되면서 급격히 위축됐다. 규제 강화 직전 회피 물량으로 2002년 11.6만가구가 승인받았던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2005년 7000가구로 급감한 사례는 정책과 규제가 시장에 얼마나 예민하게 작용하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모듈러 원가 절감…임대·기숙사 등 다양한 형태 
주택공급 촉진지구 지정…과감한 인센티브 줘야

2000년대 이후 도심 주택공급 혁신은 '기존 규제와의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주차장과 건축 규제를 부분 완화해 도시형 생활주택(2009년), 역세권 청년주택(2016년)이 도입됐고 바닥난방을 허용한 오피스텔이 준주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정부 역시 도시형 생활주택 규제 완화를 통해 2030년까지 7.7만가구 인허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은 공공택지 개발, 재개발·재건축, 매입임대 등 기존 방식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공사비가 급등하고 도심 내 가용택지가 고갈되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어렵고, 변화하는 가구 구조와 주거 수요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서울 안에서 공공택지를 추가로 확보하기는 어렵고 수도권 신도시는 서울주택을 대체하는 효과도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사업은 수익성 부족 때문에 사업이 정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분양가와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다세대·다가구주택 중심의 필지 단위 개발은 주차·녹지·안전·생활편의시설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으며,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은 가족 단위의 주택단지로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 주거복지 중심의 새로운 주택공급 방식과 유형을 발굴해야 한다. 고비용·고분담금의 초고층 단지형 아파트도, 난개발되고 있는 저층 빌라도 아닌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중층고밀 서울형 정비모형'의 도입이다. 이 모형은 5~6개의 개별필지(약 1000㎡)를 통합하는 소규모 사업을 기본단위로 하되, 5~6개의 사업부지를 하나의 블록 단위로 연계해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건물 높이는 7~12층 이하 중층으로 관리해 도시경관과 인접 필지의 일조권을 확보하되 건폐율 유연화와 공공임대·소형주택·공유주택·주거복지 특례를 활용해 용적률을 최대 350~400%까지 부여하는 모델이다.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연합뉴스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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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용적률을 활용해 50~60㎡ 규모의 중소형 저렴주택을 50% 이상 구성한다. 대단지 아파트가 가진 커뮤니티 편의시설은 블록 단위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조성·지원하고, 주차 공간은 로봇주차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해 최소화한다. 여기에 모듈러 공법을 적극 도입하면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건축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 모형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정교한 실행 체계가 결합해야 한다. 우선 주체(WHO) 측면에서 공공, 주민, 전문시행사(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 또는 민간 시행사)의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추진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 유형(WHAT) 측면에서는 동네 단위의 통합단지 내에 청년기숙사, 공공임대, 10~20년 장기 분양전환형 임대주택, 이익공유형 주택 등 다채로운 주택 유형을 담아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업방식(HOW) 측면에서는 주택공급촉진지구 지정을 통해 과감한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토지확보를 지원하되, 개발이익의 일부는 공공임대 확보와 커뮤니티 시설 확충에 활용되도록 배분해야 한다.


서울의 주택공급 역사는 기존 방식을 단순히 답습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택 유형을 개발하며 혁신해온 과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택공급 절벽, 공사비 상승, 고분양가와 고분담금, AI 및 건축기술 혁신이라는 시대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제3의 경로를 개척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사업단위와 밀도, 공공지원, 개발이익 배분 방식을 구체화하고 이를 서울의 새로운 주택모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주택공급에서 필요한 것은 공급량만 늘리는 주택정책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감당할 수 있고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주거 형태와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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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전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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