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도 '덜덜'…"제 이야기잖아요" 피해자 체험하자 달라졌다 [르포]
법무부 '가상현실 기반 심리치료' 체험해보니
성폭력·스토킹 등 콘텐츠
전국 11개 교정기관서 운영
392명 시범운영서 개선 효과
“사전·사후 상담 맡을 전문인력 확충 필요”
"이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가상현실(VR) 기기 안에서 전 연인을 붙잡고 협박하는 장면이 멈췄다. 눈앞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사실은 즐겼던 것 같다". 손짓으로 답을 고르자 영상은 다시 이어졌다. 지난 4일 찾은 서울남부구치소 내 심리치료센터에서 기자가 직접 체험한 스토킹 사범 대상 VR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말부터 전국 11개 교정기관에서 VR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고 있다. 수용자가 범죄 상황과 피해자의 시선을 가상현실로 체험하며 자신의 행동과 왜곡된 생각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거울치료' 방식이다. 성폭력 6종, 마약류 4종, 스토킹 4종, 아동학대 4종, 가정폭력 4종 등 총 22종의 콘텐츠가 개발됐다.
피해자 시선으로 되돌려보는 범죄…"고통에 공감하는 경우도"
체험은 사전 상담을 거친 뒤 시작됐다. 머리에 VR 기기를 착용하자 안내 영상이 나오고, 곧이어 전 연인 스토킹 상황이 펼쳐졌다. 가해자 시점에서 상대에게 계속 연락하고, 피하는 피해자를 힘으로 붙잡고, 협박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에는 피해자 시점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문 앞에 선 가해자의 압박감, 반복되는 연락, 벗어나기 어려운 공포가 눈앞에서 재현됐다.
생각보다 몰입감은 컸다. 단순히 설명을 듣는 게 아니라, 시야 전체가 상황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내가 한 행동을 상대는 어떻게 느꼈을까'를 강제로 마주하게 되는 구조였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피해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이 행동은 어떤 결과를 만들까요" 같은 질문이 나왔다. 손짓으로 답을 고르면 그 선택에 따라 설명과 시나리오가 조금씩 달라졌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답을 고르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안내가 나왔다.
프로그램은 범죄 유형별 특성을 반영해 개발됐다. 성폭력 사범은 왜곡된 성 의식과 여성에 대한 적대감, 스토킹 사범은 관계 독점과 강제적 유대감 형성 욕구, 가정폭력 사범은 갈등 해결 방식과 성 고정관념 등을 다루는 식이다. 회기는 범죄 상황 인식, 인지 왜곡 수정, 동의와 경계 이해, 피해자 공감, 위험요인 대처 등 단계로 구성된다.
실제 시범운영 과정에서도 수용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사례가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스토킹 사범 중에는 '내가 왜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억울함이 큰 경우가 많지만, 피해자 시점의 장면을 본 뒤 '그 사람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고 말하는 수용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사범 대상 프로그램에서도 한 수용자가 손을 떨고 말을 더듬는 등 감정이 격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거 제 이야기인데요"라고 털어놓은 뒤, 교육을 마치고는 "여성과의 관계에도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밖에 나가면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범운영서 개선 효과…확대 관건은 인력·예산
법무부는 지난 2월~6월까지 서울남부구치소를 비롯한 9개 기관에서 성폭력·스토킹·아동학대·가정폭력 사범 392명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VR 프로그램을 병행한 처치집단은 기존 심리치료만 받은 통제집단보다 인지 왜곡 개선, 공격성 감소, 공감 능력 향상 등 주요 지표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현장에서는 프로그램 확대를 위해 인력과 예산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VR 기기와 콘텐츠가 있어도 체험 전후 상담, 반응 분석, 사후 개입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면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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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운영 성과를 분석해 범죄유형별 콘텐츠를 보완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심리치료 체계를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수용자의 건전한 사회복귀와 재범방지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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