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지음, 김헌 완역 '오뒷세이아'
놀란의 영화가 깨운 3000년 고전
괴물과 폭풍보다 오래 남는 '돌아온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라는 질문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에서 10년을 싸우고, 다시 10년을 떠돈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다. 김헌은 그 귀향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22년을 썼다. 영웅의 부재보다 번역의 시간이 2년 더 길었다. 그 사이 크리스토퍼 놀란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거대한 아이맥스 영화로 만들었고, 국내 개봉을 앞둔 7월 '오디세이·오디세이아' 관련 도서 판매량은 전년 같은 달보다 595.5% 늘었다. 3000년 묵은 시가 2026년 여름 서점의 신간대에 다시 도착했다. 영화가 고전을 깨웠지만, 이 책은 서둘러 만든 영화 연계서가 아니다. 영화는 5일 개봉했고 책은 그 뒤 출간됐지만, 번역자는 놀란이 항해를 시작하기 훨씬 전인 2004년부터 노를 저었다.

[이 책 어때]영웅을 알아본 것은 활이 아니라 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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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제목 '오디세이아' 대신 '오뒷세이아'를 택한 것부터 이 번역은 독자를 편안하게 맞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첫 구절도 영웅의 이름이 아니라 "남자를 내게 말하라, 무사여"로 시작한다. 작품은 신들이 그의 귀향을 결정한 뒤에야 오뒷세우스라는 이름을 내놓는다. 이름난 영웅의 모험담인데 정작 주인공은 이름을 잃은 채 등장한다. 그래서 이 서사시는 한 남자가 세상을 정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오래 떠돌아 여러 사람이 되어버린 남자가 다시 자기 이름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읽힌다. '곡절 많은 자' 오뒷세우스는 왕이자 전사이고, 표류자이며 거지이고, 필요할 때마다 다른 이름을 지어내는 거짓말쟁이다.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경험 뒤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다.


대중문화는 '오뒷세이아'를 퀴클롭스와 세이렌, 키르케, 칼륍소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놀란의 카메라가 탐낼 만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24권 가운데 우리가 '오디세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해상 모험은 제9권부터 12권까지 네 권에 불과하다. 그것도 현재 진행되는 사건이 아니라 오뒷세우스가 파이악스인들에게 들려주는 과거 회상이다. 첫 네 권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아들 텔레마코스이고, 제13권부터 서사의 절반은 이미 도착한 이타카에서 펼쳐진다. 호메로스가 괴물보다 더 오래 붙잡은 것은 여행이 아니라 귀환이었다. 떠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돌아오는 데에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 없이 변해버린 집을 견디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때를 기다리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오뒷세우스가 이타카 땅을 밟을 때도, 구혼자들을 활로 쓰러뜨릴 때도 아니다. 페넬로페가 남편을 시험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하인에게 부부의 침대를 옮기라고 말한다. 오뒷세우스는 분노한다. 그 침대는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자신이 직접 지었으므로 나무를 베지 않고서는 옮길 수 없다. 그 비밀을 듣고서야 페넬로페는 눈앞의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인다. 왕의 활을 당기고 적을 죽인 힘보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침대의 기억이 그의 신분을 증명한다. 집은 벽과 지붕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기억하는 사소한 비밀로 완성된다. 스무 해 만에 돌아온 영웅에게 페넬로페는 "당신이 정말 그 사람인가"를 묻는다. 귀향은 도착이 아니라 인정받는 일이다.


대승을 거두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그러나 신의 저주가 귀국길을 가로막는다. 유니버설픽처스

대승을 거두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그러나 신의 저주가 귀국길을 가로막는다. 유니버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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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페넬로페는 기다리기만 한 현모양처가 아니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에는 풀어 구혼자들을 속였고, 마지막에는 오뒷세우스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거짓말로 그를 시험한다. 지략으로 살아 돌아온 남자를 지략으로 확인한다. 둘의 재회는 영웅이 아내를 되찾는 장면이 아니라, 가장 영리한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읽는 장면이다. 다만 두 사람의 20년은 공평하지 않았다. 오뒷세우스는 수많은 땅과 여자, 이름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페넬로페에게 허락된 선택은 기다리거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아들의 첫 성장은 어머니에게 공적 발언을 그만두고 방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서양 서사의 원형이라는 찬사 뒤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이 집과 왕권, 아내와 노예를 다시 소유하는 오래된 질서도 함께 놓여 있다. 이 불편함까지 읽어야 고전은 교훈이 아니라 살아 있는 논쟁이 된다.

김헌의 번역은 그 낯섦을 오늘의 상식으로 매끈하게 다듬지 않는다. 희랍어의 도치된 어순을 살리기 위해 문장이 때때로 거꾸로 흐르고, 흔히 '마음'이나 '정신', '분별력'으로 옮기던 '프레네스'를 원뜻에 가까운 '횡격막'으로 번역한다. 책 속 인간들은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현대인이 아니다. 횡격막으로 생각하고, 담즙이 치솟으며, 기개 깊숙이 고통을 겪는다. "얼마나 좋은 횡격막이 있는가, 흠 없는 페넬로페에겐" 같은 문장은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읽는 속도를 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마찰 덕분에 독자는 현대인의 심리학을 토가처럼 입은 고대인에게 덮어씌우지 못한다. 번역은 고전을 친절하게 데려오는 일인 동시에, 독자를 고전이 태어난 낯선 세계로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 판본은 후자를 택했다. 쉽게 읽히는 번역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완고하고 거친 책이지만, 호메로스의 인간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몸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 완고함은 이유가 있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신화에 거대한 육체를 선사했다. 바다와 폭풍, 전투와 괴물을 극장의 크기로 되살렸다. 영화가 원작 관련서 판매를 여섯 배 가까이 끌어올린 현상은 고전이 더 이상 홀로 독자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오늘의 독자는 스크린에서 먼저 이야기를 만나고, 그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하려 책을 펼친다. 그러나 영화가 이 책으로 독자를 데려왔다면, 책은 영화가 미처 다 보여주기 어려운 곳으로 독자를 돌려보낸다. 아버지 없는 집에서 자라야 했던 아들, 돌아온 남편을 곧바로 믿을 수 없었던 아내,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집을 지킨 돼지치기, 그리고 원하지 않은 주인의 전쟁과 귀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로 말이다.


오늘 우리가 '오뒷세이아'를 다시 읽는 까닭도 모험에 대한 향수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학교와 직장, 도시와 관계를 옮길 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오래 떠난 뒤 돌아왔을 때 집이 그대로 있으리라는 보장도, 자신이 떠나기 전의 사람과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뒷세우스가 극복해야 했던 마지막 장애물은 바다도 신도 아니었다. 자신이 여전히 돌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남겨진 사람들이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지였다.


영화는 영웅이 얼마나 멀리 갔는지를 보여준다. 호메로스의 시는 묻는다.


그토록 멀리 갔다 온 사람이 과연 같은 사람일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랑은, 그 달라진 사람을 다시 알아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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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지음 |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760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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