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지니, 청년 실업률·물가 상승 분노 폭발
49.7도 기록 경신에 순환 정전·단수 확산
대통령 "사보타주"…노조는 "투자 부족"
기록적 폭염 속 정전이 이어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연합뉴스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용해 "전기와 물 공급 중단을 계기로 누적된 경제난과 공공서비스 붕괴에 대한 불만이 카이스 사이에드 정권을 향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중해에 접한 튀니지의 최근 기온은 섭씨 45도를 웃돈다. 지난달 17일 중부 카이르완에서는 49.7도가 관측돼 종전 최고치인 49.2도를 넘어섰고, 북동부 자구안도 48.6도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청은 10개 주에 4단계 경보 중 위에서 두 번째인 오렌지 경보를 내렸다.
냉방 수요가 몰리자 노후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렸다. 전력 수요는 6기가와트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국영 전력·가스공사(STEG)는 순환 정전에 들어갔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수까지 겹쳤다. 파이살 트리파 STEG 사장은 에어컨 사용이 몰리면서 전력망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자 청년 시위대는 도로를 봉쇄하고 타이어를 불태웠다. 지난달 25일 수도 튀니스에서는 수천 명이 모인 반정부 집회가 열렸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권한 강화에 나선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참가자들은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감옥과 물가 상승만 있다"고 외쳤다.
청년 실업률 37%에 전력망 방치…폭염 속 정전으로 불만 터져
이들이 거리로 나선 배경에는 생활고가 있다. 경제성장률 등 거시 지표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청년 실업률이 37%를 웃돌고, 식료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타흐리르 중동정책연구소의 사하르 메크메크 연구원은 "국민들은 삶이 후퇴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전기와 물 공급 중단은 현대 튀니지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전 배경에 사보타주(고의 파괴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전력·수도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비정상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책임자 문책과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누군가 시민을 괴롭히고 상황을 부추기는 것을 국가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투자 부족과 재정난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STEG의 발전소 투자액은 2016~2020년 19억 4700만 디나르(약 9540억원)에서 2021~2025년 2억 4800만 디나르(약 1215억원)로 87% 줄었다. 마지막 대형 발전소가 준공된 것은 7년 전이다. 부채는 지난 6월 기준 73억 6000만디나르(약 3조 6065억원)까지 불어났고, 공공기관과 민간이 갚지 않은 미수금도 60억 6000만디나르(약 2조 9695억원)에 이른다.
'아랍의 봄' 성공 사례였는데…5년 만에 뒤집힌 민심
지금의 반발은 5년 전 분위기와 정반대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국정 혼란 종식을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조치를 밀어붙였지만, 당시에는 상당수 국민이 이를 지지한 바 있다.
튀니지는 2011년 '아랍의 봄' 발원지이자 중동·북아프리카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나라다. 그해 초 23년간 집권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된 뒤 정치 혼란과 경제 침체가 이어졌고, 2019년 대선에서 당선된 법학 교수 출신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를 끝낼 '구원자'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척결을 내세워 5년 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입법부와 사법부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이듬해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과 행정부 수반 임명권은 물론 의회 해산권과 판사 임명권까지 몰아줬다.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의회 신임 투표를 거치지 않도록 해 쿠데타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90.7%로 재선했지만, 투표율은 28.8%에 그쳤다. 아랍의 봄 이후 대선 투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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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위기그룹(ICG)의 리카르도 파비아니 북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FT에 "튀니지에서 공공서비스가 점진적으로 붕괴하면서 국가 기능 전반의 쇠퇴를 상징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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